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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 Mar 09. 2022

100일의 기적

양준일 따라 하기

100일이면 동굴에 들어간 곰이 사람이 되고, 태어난 아기가 쑥쑥 자라 백일 잔치를 한다. 그리고 100일이면 습관을 바꿀 수 있고 어쩌면 인생도 바뀔 수 있는 시간이다.


재작년 봄, 양준일이 ‘영혼의 말 한마디’라는 카카오 100일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너무 늦게 알았다는 게 문제다. 모집 인원이 선착순 500명에서 1000명으로 늘어났지만 마감은 빨랐고, 내가 알았을 때는 벌써 끝이 난 뒤였다.

100일 동안 카톡에 짧은 글을 쓰듯이 간단하게 매일 글을 쓰는 프로젝트였다. 일정 금액의 돈을 걸고 빠지는 날만큼 벌금을 내고, 100일 동안 꾸준히 하면서 좋은 습관을 만들어 간다는 취지의 프로젝트였다.

안타까운 마음에 다른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매일 책을 읽고 좋은 문장, 글귀를 옮겨 적는 모임과 매일 만 보를 걷는 모임이었다. 중요한 것은 ‘매일’이라는 것이었다. 100일 동안 매일!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매일’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팬들은 아침마다 올라오는 그의 글을 보면서 울고 웃었다. 그리고 각자 자기의 하루를 돌아보고 자신을 돌아보며 글을 올리고, 서로 글로 화답하며 100일을 보냈다.

그 100일 동안 그에게 많은 일들을 일어났다. 롤러코스터를 타듯 좋은 일, 나쁜 일들이 번갈아 일어났고, 그럴 때마다 글을 통해 서로를 위로하기도 하고 서로를 격려하기도 했다.


그는 프로젝트가 30일이 지난 뒤, 중간 결산 라이브 방송을 했다. 편지로만 만나던 사랑하는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 같다면서 떨림과 설렘이 가득한 표정과 마음으로 화면에 나타났다. 웬만한 큰 무대에서도 떨지 않던 그가 그날은 유난히 많이 떨고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 미묘한 떨림은 영상을 통해 전해졌고, 팬들 역시 마치 펜팔로만 연애하던 사람을 처음 만나는 것 같은 그런 기분 좋은 설렘과 행복을 느꼈다.


연예인 생활을 막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외부적으로 매우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던 그가 100일을 거의 빠짐없이 매일 아침 글을 쓰고 그것을 올려 팬들과 공유한다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일 텐데 그는 그것을 너무나 잘 해냈고, 그리고 그로 인해 팬들과의 교감과 소통이 끈끈하게 이루어졌다.

외면적으로의 만남이 아니라 내면적으로 만남이, 그 프로젝트의 타이틀처럼 영혼의 만남이 일어나는 장이었다. 글로 만나는 일은 얼굴로 만나는 일보다 훨씬 더 깊게 이루어진다. 그때 그와 팬 사이에 생긴 연대의 힘은 지금도 유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프로젝트를 통해 많은 팬들은 영혼을 만지고, 영혼을 보듬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글의 힘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단지 외모만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라 내면적으로도 아름다운 사람임을 확실히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프로젝트는 끝이 났고, 100일이라는 여행도 끝이 났지만 나의 100일 여행은 끝이 나지 않았다.

나는 그다음 프로젝트 기간 동안 새로운 프로젝트를 열었다. 그처럼 나도 매니저가 되어 모임을 이끌었다. 100일은 역시 만만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허덕대며 끝까지 완주했다.

'어린 나를 만나는 여행'이란 제목의 프로젝트였다. 매일 내가 제시하는 질문에 따라서 얼굴도 이름도 성별도 모르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자신의 은밀한 어린 시절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총 100개의 질문을 던졌고, 어린 시절의 아프고 슬프고 행복하고 기쁘고 감추었던 이야기를 꺼내놓으면서 함께 웃고 우는 시간들을 보냈다.

어둡고 축축한 기억을 햇빛 아래로 꺼내놓으니 보송하게 말랐다. 무거웠던 것이 조금씩은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나만 그렇지 않고 너도 그렇다는 걸 알게 되니까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양준일은 슬픔을 나누자!라고 말한다. 무엇이든 나누고 싶어 하는 그는 슬픔과 고통과 외로움을 나누자고 한다. 그것은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니까, 갖지 않은 걸 나눌 수는 없으니까. 그는 슬픔은 나눌수록 줄어들고 나눌수록 가벼워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누는 행위 자체가 행복이기에 슬픔도 나누면 행복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안에 스며있던 슬픔과 고통이 나누어져 줄어들었기를 바란다. 잘게 쪼개지면서 무게도 조금은 가벼워졌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그때만 느꼈던 무한한 행복과 기쁨을 다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때는 처음 만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항상 새롭고 신기하고 낯설고 놀라웠으니까.


양준일 덕분에 100일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고, 그리고 이후에도 종종 나는 그 방법을 내 생활에 적용해 보곤 한다.

잘 안 되는 일도 "그래, 우선 100일만 해 보자!" 라면서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몸에 익어가고, 어렵지 않게 그 일을 습득하게 되고 원하던 습관을 얻게 된다.(물론 방심하면 요요 현상이 따라오기도 하지만)


노래하고 춤만 추는 가수가 아닌, 다양한 문화적 활동을 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대로 그는 다양하게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고 팬들을 이끌고 있다. 그가 먼저 걸어가는 그 길을 따라가는 일이 즐겁기도 하고 매우 유익하기도 하다.

요즘 나의 덕질의 과정을 곰곰 돌아보면서 역시나 양준일 덕질은 참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쓰담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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