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예술작품으로
동화의 독자는 어린이이다. 어린이에게는 매일매일이 새롭다. 그들은 하루를 자고 일어날 때마다 성장하고 변화한다. 어린이에게는 어제와 나와 내일의 나는 같지 않다. 어른이라는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세포분열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어린이의 하루와 어른의 하루는 같을 수 없다.
아이들은 가만히 멈추어 있을 수 없다. 온몸이 그렇게 자라나고 있는 중이니까. 끊임없이 움직이고 꼼지락거리고 뛰어다닌다. 그런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얌전히 있으라고, 움직이지 말라고 하는 것은 자연의 본성을 거스르는 요구이다. 아이들은 뛰어놀아야 한다. 아이들은 움직여야 한다. 아이들은 산만해야 한다.
이런 아이들을 대상으로 글을 쓰다니! 멈춰 있고 매일 비슷한 삶을 사는 어른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위해 쓰는 글이라니... 그래서 동화나 동시를 쓰는 어른 작가들에게는 딜레마가 생긴다. 과연 이게 가능한 일인가, 아이들과의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을까... 항상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돌아보면 나는 그렇게 움직이고 부산스러운 아이는 아니었다. 나는 마르고 작고 자주 아프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혼자 조용히 노는 걸 좋아했고, 밖에 나가는 것보다는 집에서 노는 걸 더 좋아했다. 책을 읽고, 인형놀이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꼼지락거리면서 무언가를 만들고... 그래서 지금도 내가 쓰는 이야기는 그런 아이를 떠올리며 쓴다.
기발하고 기묘하고 신기하고 개구쟁이 같고 악동 같은 이야기도 좋아하지만 이야기를 짓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의 나를 소환하고, 어린 나를 향한 글을 쓰게 된다.
동화의 세계는 따뜻하고 희망적이고 밝다. 아무리 어두운 이야기라도 그 안에 숨겨진 희망을 포기할 수가 없다. 매일 성장하고 변화하고, 하나의 완성된 인간이 되어야만 하는 아이들을 불행과 슬픔과 고통에만 집중하게 하고 싶지 않다.
현실은 힘들고 매섭지만 그래도 누군가 손 잡아 주는 사람이 있다고, 이겨내고 싸울 수 있는 힘이 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해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그런 응원을 하고 싶다. 동화에는 그런 어른 작가의 마음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항상 내가 가장 최상의 상태일 때, 모든 것이 균형 잡히고 편안할 때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좋은 기운을 전할 수 있고, 그것이 독자의 마음에 가 닿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가끔 그렇지 않을 때 글을 쓸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그 와중에 그 안에서 희
망을 발견하기 위해서 애를 쓰면서 쓴 이야기가 꽤 괜찮게 맘에 들게 나올 때가 있다.
예술가는 고통에서 작품을 길어낸다는 말이 있다.
양준일이 다시 가수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에는 호의적이었던 언론이 그가 활동을 활발히 하려는 순간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어제는 찬사를 보내던 언론이 다음 날 그를 잡아 끌어내렸다.(심지어는 얼마 전 '슈가맨' 프로그램에 그를 출연시켜 그를 소환하는데 큰 공을 세웠던 JTBC에서도 근거 없는 유튜버와 안티들의 주장을 사실 확인 없이 그대로 방송하기도 했다)
헛소문과 유언비어를 퍼뜨려 자극적인 내용을 방송하며 조회수를 늘리려는 유튜버는 그의 과거를 끄집어내고 꼬투리를 잡아 뭐든 새로운 이슈를 만들려고 애를 썼다. 팬이 지켜주지 않으면 기획사도 소용없다며 기획사에 소속되기를 거부하던 그는 이런 거센 바람을 혼자서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마도 인지도는 있지만 다른 빽이나 연고가 없던 그를 먹잇감으로 하기에는 적합하다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런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그도, 팬들도 마음고생을 했다. 롤러코스터를 타듯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번갈이 일어났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구설수가 떠도는 와중에,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작품을 완성시켰다. 쇼핑을 간 가족을 기다리며 차 안에서 40여분 만에 'Alibis'가사를 완성했다고 한다. 그때의 매서운 바람을 함께 맞았던 팬들에게는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때의 아픔을 떠올린다. 그의 아픔과 고통이 작품으로 승화된 것이다.
그는 노래 가사 안에 자신의 진솔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쓴다. 그의 이야기는 행복하고 희망적이지만은 않다. 힘든 삶을 살았고, 실패와 좌절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가수로 재데뷔하고 나서도 정글 같은 연예계는, 야만적인 언론은 그를 곱게만 보지 않았고 그러면서 여러 일을 겪기도 했다.
예술가에게는 고통이 작품이 된다. 하지만 진짜로 고통에 휩싸여 고통에 눌려 있을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고통 속에서 그것을 딛고 이겨내려 노력할 때, 고통을 통해 불을 통과한 쇠처럼 단단해질 때 그것이 작품으로 승화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쓰고 만든 대부분의 노래들은 고통 속에 만들어 낸 것들이다. 노래를 듣고 가사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그가 나눠주는 그 아픔과 슬픔과 고통은 위로와 희망이 된다. 아프고 슬픈데도 기쁘고 행복해지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가득 들어있다. 지금 그가 그것들을 이겨내고 우뚝 서 있기에, 지금 함께 웃을 수 있기에 우리는 그 안에서 희망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쉽진 않겠지만 아프고 슬프고 고통스러울 때는 감사하기로 했다. 그 순간은 바로 뭔가 멋진 작품이 나오는 순간이니까. 진정한 삶의 보석을 발견하는 순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