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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 Mar 22. 2022

빠져든다

극강의 몰입


무엇에 완벽한 몰입을 하고 난 뒤의 기분은 정말 상쾌하다. 몸이 피곤하고 지쳐도 머릿속과 마음속은 그야말로 청량감이 가득하고 온몸에 에너지가 가득 차는 걸 느낀다.


어릴 때는 놀이에 빠지면 해가 지는 줄 모르고 몰입하여 놀이 세상에 빠져들곤 했다. 일부러 시간을 내고 돈을 들여 영화관을 가거나 공연장을 가는 것도 두어 시간 동안 이런 완벽한 몰입감을 느끼고 싶어서일 것이다. 놀이 공원에 가는 이유도 놀이 기구를 타며 그 순간의 긴장과 호흡에 집중하고 몰입하여 그 짜릿함에 빠져들기 위해서일 것이다.(무서운 놀이 기구를 못 타기에 그 순간의 몰입감은 추측만 할 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땅에 발을 딛고 있는 것도 잊고, 중력에 잡힌 몸도 잊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느낌. 그 완벽한 몰입감을 얼마나 자주, 얼마나 강하게 느껴보았는가?

사랑 역시 그런 몰입감을 준다. 세상에 아무것도 없이 단 둘이만 존재한다고 느끼는 그 순간은 상대방에 집중하고 완벽히 몰입되는 순간일 것이다.


그렇다면 덕질은? 덕질이야말로 완벽한 몰입감을 느끼기 좋은 방법이다. 팬들은 한 사람에 모든 관심과 마음과 오감이 집중된다. 사랑하는 스타의 미세한 표정, 웃음, 찡그림, 움직임에 집중한다. 그의 눈빛에 빠져들고 그의 손짓에 반응한다. 그가 어떤 옷을 입고 나왔는지, 어떤 신발을 신었는지, 어떤 시계를 찼는지, 어떤 머플러를 맸는지, 어떤 머리색을 하고 있는지, 앞머리를 잘랐는지 안 잘랐는지, 물을 몇 모금 마시는지, 어떤 텀블러에 마시는지, 심지어는 어떤 색의 양말을 신었는지까지... 이처럼 누군가에게 빠르고 강하게 반응하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런 몰입과 집중을 옆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한다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해 보면 솔직히 좀 끔찍(?)하긴 하다. 하하하. 그래서 스타라는 직업은 극한 직업임에 틀림없다. 일거수일투족이 관찰되고, 집중하여 꼼꼼하게 살피는 팬들이 수두룩하니까 말이다.


덕질을 하며 완벽한 몰입에 빠지는 일이 에너지를 충전하고 삶의 즐거움을 주는 일이긴 하지만 때로는 과도한 덕질로 인해서 같은 팬들이나 스타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를 보기도 한다. 과다한 몰입으로 스타를 마치 자신의 아들처럼, 남편처럼, 애인처럼 착각하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래 라며 지시하고 훈계하고 가르치려는 경우도 생긴다. 아마 그런 사람들의 경우에는 실제 생활에서도 타인에게 그런 식의 간섭을 관심과 사랑의 방법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게 부정적인 방식으로의 몰입이 아닌 긍정적인 방식의(이 에세의 제목처럼 슬기롭게~) 몰입은 삶의 활력을 주고 에너지를 충전시키고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끼게 해 주며 잠재의식을 일깨우고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종종 덕질을  시작하고 나서 우울증에서 벗어났다거나, 무기력증을 극복했다거나, 생기 있어지고 밝아졌다는 고백을 하곤 한다.


코로나로 인해서 3년째 답답한 기분으로 살고 있는 중이다. 만남이나 외출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대면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은 무조건 비대면으로 하고 있다. 강의도, 특강도, 출판사 미팅도, 공부 모임도... 처음엔 이 모든 일들이 어색하고 불편하고 어려웠지만 이제 슬슬 적응되어 점점 편안해져 간다.


뭔가 순식간에 엄청나게 커다란 변화가 불어닥친 느낌이다. 좋고 나쁘고, 할 수 있고 할 수 없고를 따질 새도 없이 파도가 들이치듯이. 처음엔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기 버거웠고 답답하기만 했지만 지금은 모두들 자연스러워지고 있는 것 같다. 집 안에, 방 안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하루도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는데 이제는 이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내고 있다. 베이킹도 하고, 뜨개질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청소도 하고, 식물도 키우고, 관심 있던 이런저런 강좌도 듣고,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많아졌고(서로를 견디느라 힘들 때도 종종 있지만)...


무엇보다 내가 나 자신과 함께 있는, 내가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과 덕질을 마음껏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점. 그리고 그런 덕질을 하는 나를 이렇게 찬찬히 돌아볼 수 있다는 점이 코로나 시기를 통과하며 겪는 색다른 경험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매일 외출을 했다. 일이 없어도 나갔다. 나가면 분주하고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피곤했는데 그것이 열심히 사는 것이라 착각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방 안에 앉아있다. 그리고 나는 분주하고 바쁘고 피곤하다. 내가 나와 함께 하는 시간들이 많아졌고, 나에게 몰입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는 일에 매우 바쁘고 분주하다.


그러다 가끔씩 꿀 같은 외출을 할 일이 생긴다. 덕질의 완성, 콘서트가 열리는 날. 다행히 늦은 나이에 다시 가수 활동을 재개한 그는 매우 성실하고 부지런하여 꾸준히 공연을 한다. 덕분에 한 두 달에 한 번쯤은 콘서트장에서 완벽한 몰입을 경험할 수 있다.


몰입도 연습을 하다 보면 점점 더 쉬워진다. 이렇게 자꾸 몰입하기를 연습하다 보면 어느새 몰입의 장인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몰입의 에너지를 모으면 생각보다 많은 일들을 척척 해치울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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