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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 Feb 19. 2022

갖고 싶다

굿즈를 주세요

간절히 갖고 싶은 것이 있나? 란 질문을 던져본다. 사실 오랫동안 그런 건 없었다. 뭔가가 갖고 싶은 적은 있었지만 간절히 갖고 싶은 정도는 아니었다.

문득 무언가를 가져야겠다는 마음이 떠올라 이곳저곳 쇼핑몰을 뒤진다. 그러다 깨닫는다. 나는 이미 비슷한 것을 갖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 손에 넣는 순간 나는 그것을 던져놓고 다른 것을 찾고 있을 것임을.


알면서도 반복되는그 덫에 빠져든다. 없으면 만든다. 그게 문제다. 뭐든 갖고 싶다는, 물욕과 욕망이 있을 때의 그 긴장감을 즐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신발을, 옷을, 모자를, 책을, 전자제품을, 가방을, 문구용품을, 먹거리를... 감당하지 못할 물건들에 허우적대면서 또다시 사그라드는 그 욕망을 억지로 불러일으킨다.


덕질을 시작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 중 하나가 바로 굿즈의 세계이다. 덕질과 굿즈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덕질러들은 스타와 관련된 것은 무엇이든 소유하고 싶어 한다. 스타를 떠올릴 만한 것, 스타의 싸인이 들어간 것, 스타가 입고 사용하던 것... 그리고 내가 덕질 공동체에 소속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인정할 만한 물건들.

수많은 굿즈들이 물밀듯이 내 생활 속으로 들어온다. 그것들로 인해 나와 그와 또 다른 덕질 협력자들과의 끈끈한 인연의 끈이 생긴다. 이건 덕질의 필수 과정이며 필수품이라 할 수 있다.


나는 평소 내 물건을 잘 관리하거나 정리하지 못한다. 사용해서 없어지는 물건이라면 괜찮은데 오래 간직해야 할 물건이라면 처치곤란이다. 현재 갖고 있는 것만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항상 머리가 아프다.

그런데 요즘에는 거기에 굿즈들이 쌓이기 시작한다. 굿즈는 물건이 아니다!라고 외쳐보지만 어쩔 수 없이 굿즈 역시 물건으로 쌓여간다.


그러나 모든 물건은 물건이라기보다 과거이며 추억이다. 그래서 물건을 버리고 정리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들은 물건을 버리는 것을 마치 자신의 과거가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생각한다.

미니멀리즘에 대한 책도 읽고 다큐도 보고 하지만 물건과의 사투 곧 나의 과거와의 사투는 아마도 평생 계속될 것 같다.


그렇다면 나의 덕질의 흔적과 추억인 굿즈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아마도 이 덕질을 관두고 덕질의 세계에서 완전히 발을 뺀다면 아마도 그것들도 정리되어야 할 과거가 될 터이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에 대해서는 아직은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굿즈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굿즈는 물건이지만 동시에 덕질러들에겐 덕체의 일부분과도 같다. 굿즈에서 그의 향기를 그의 영혼의 일부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중에 짝사랑하는 남자 친구의 집에 낮에 몰래 들어가 그의 물건을 하나씩 갖고 나오는 여자 이야기가 나온다. 그녀는 자기의 물건 하나를 몰래 숨겨 두고, 그의 물건을 갖고 나오면서 마치 그의 일부를 함께 공유하는 듯한 은밀한 비밀을 느낀다. 그러다 결국 들통이 나면서 멈춘다는 이야기이다.

또 다른 단편에서는 인간 여자를 좋아하는, 온천에 사는 원숭이 이야기가 나온다. 그 원숭이는 인간 여자의 이름을 훔침으로써 그 여자를 소유한다고 생각한다. 여자들은 자기 이름을 어느 순간 문득 잊어버린다. 그리고 원숭이는 그 순간 그 여자를 자기가  완전히 갖는다고 생각한다. 원숭이는 그 이야기를 온천에 혼자 온 남자에게 은밀하게 풀어놓는다.


그 두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소유한 수많은 굿즈들이 생각났다. 스타나 연예인에 대한 팬들의 사랑과 소유욕이 생각났다. 그와 관련된 물건을 소유함으로써 우리는 그의 일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혹은 그의 일부를 가진다고 착각한다. 마치 그 여자처럼, 원숭이처럼...

그러고 보니 일본인들은 물건에 그 물건 주인의 영혼이 깃든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래된 물건이 변하여 도깨비가 되는 옛이야기도 있는 것을 보면 물건과 영혼의 관계가 그리 상관없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가끔 굿즈가 상업적이라며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덕질러들에게 굿즈는 자신이 사랑하는 스타의 한 조각이다. 그것이 상업적으로 악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굿즈는 스타에게도 덕질러에게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위로와 위안이 됨에는 사실이다. 스타는 덕질러들에게 자신을 떠올릴 수 있는 물건을 주고, 덕질러들은 물건을 통해서 스타와 함께한다.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르겠지만 종교에서도 굿즈가 존재한다. 십자가 목걸이라든지, 성화, 묵주, 성모상, 염주, 작은 불상 등도 굿즈의 영역에 속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굿즈는 영혼의 영역과도 관련이 있다.


어릴 때 문방구에서 좋아하던 스타 사진을 고르던 일이 생각난다. 소중하게 스크랩북에 넣어 두고, 혹은 코팅을 해서 책받침으로 쓰거나 연습장을 꾸미거나 잘라서 필통을 만들기도 했던... 생각해보니 그때부터 내 곁에는 굿즈가 있었구나 싶다.


굿즈 티셔츠를 입고, 굿즈 양말을 신고, 굿즈 모자를 쓰고, 굿즈 열쇠고리를 달고, 굿즈 사진을 보며, 굿즈 가방을 메고, 굿즈 사진을 보며, 굿즈 앨범을 듣고 굿즈 책을 읽는다. 내 주위에는 온통 나의 스타의 숨결과 그의 영혼이 가득하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의 마지막 장면에서처럼 스타의 몸을 조각조각 나눠서 가질 수는 없는 일. 굿즈라도 조각조각 나눠서 가질 수 있으니 다행이다.


왜 물건은, 굿즈는 가져도 가져도 끝이 없고, 가져도 가져도 갖고 싶을까. 그 이유는 아마도 우리의 끝없는 소유욕과 물욕과 욕망 때문일 것이다. 살아있는 한 영원히 해소할 수도, 해소하고도 싶지 않은 그 욕망들...

그리고 실체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하지만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아무리 소유한다고 해도 절대로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그 갈증 때문일 것이다.

어쩔 수 없다. 그저 반복되는 욕망에,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듯이 꿈틀대는 그 욕망에 (고통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는다는 양준일처럼) 무릎을 꿇는 수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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