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해진 책의 재미
어떤 책인가의 작가의 말에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나는 쓰는 것보다 읽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읽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찾는다. 그것을 쓰려고 노력한다...라고.
동화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 책 안의 무궁무진한 세계들이 놀라웠고 일어나는 일들이 신기했다. 책 속으로 빠져들어 시공을 뛰어넘는 경험을 했다. 책이 재미있다 보니 사실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현실은 좀 심심하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책 속 이야기를 현실에 적용시켜 노는 걸 즐겼다. 풀밭은 동물들이, 작은 인간들이, 푸우가 사는 숲이 되었고, 방은 열차를 타고 가는 정거장이 되었고, 구겨진 이불은 산과 강이 되었다. 이야기와 상상이 더해지면 현실은 훨씬 재미있어졌다. 작은 벌레는.모험가가 되었고, 모래가 쌓인 곳에선 모래요정 바람돌이를 만날 수 있어다.
혼자서도 잘 놀 수밖에 없었다. 책을 읽으면 그 안에는 수많은 친구들이 있었으니까. 오히려 혼자 노는 게 더 재미있었다. 그 친구들을 불러내야 하니까.
가끔 동생을 이 놀이에 끌어들이곤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성향을 지닌 동생은 그저 언니가 놀아주니 따라다녔을 뿐 완전히 나의 상상의 놀이 세계로 들어오지는 못 했던 것 같다.
동화책의 상상은 갖가지 놀이로 재탄생되었다. 외계인에게 도망치며 우주 보물을 지키기도 하고, 전쟁이 나서 최소한의 짐만 꾸려 우주 열차를 타기도 하고, 겨울을 나기 위해 땔감과 열매를 모으기도 하고, 짐마차에서 먹고 자며 여행을 하고, 밧줄에 의지해 용암 지대를 건너기도 하고, 알뜰시장을 열어 전단지를 만들고 서랍 속에 굴러다니던 학용품을 강매해 동생 돈을 강탈? 하기도 했다. 과학자가 되어 실험을 하고 악기와 텔레비전을 발명? 하기도 했다.
책 읽기는 계속되었지만 자라면서 상상의 놀이를 벗어났다. 현실은 생각보다 꽤 스펙터클했다. 지루하고 심심해지면 스펙터클을 만들기도 했다. 어른이 되니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져서 내가 원한다면 재미있는 일을 만드는 게 가능해졌다. 어릴 때만큼 책에서 얻는 만족감이 많지 않아서였을까. 책에 몰입하는 일도 흥미를 느끼는 일도 적어졌다.
그러다 마침내 동화를 쓰게 되었을 때 나는 어릴 때 책에서 느꼈던 그 짜릿한 재미를 불러내고 싶었다. 처음엔 그렇게 시작했고 어느 정도 되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런데 그 사이 또 너무 자라 버린 탓일까. 그 즐거움을 다시 일으키고 불러오는 일이 이젠 어렵다. 그때의 내가 원하던, 읽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자꾸 멀어지고 있다. 그것이 요즘 가장 고민 중인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