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7일.

오늘 한 생각들

by 버드나무
기능이 더 좋은 장비가 새로 도입된다 해도 바로 보급되는 게 아니다. 화재 신고를 받고 출동한 대원들 대부분은 새로 나온 황토색 방화복이 아닌 검정색 방화복을 입고 있었다. 구형과 신형은 고열을 견디는 기능에서 3배 차이가 난다. 정석찬 진압팀장은 “검은 건 다 지급이 됐는데 신형은 100% 지급이 되지 않았다. 지방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절반이 안 되는 곳도 있다”라고 말했다.


시사인의 2014년 8월 기사("동료를 잃고도 나는 구하러 가네")에서 발췌한 대목이다. 한국 사회에 이해하기 힘든 일이 한두 가지겠냐마는, 왜 소방관이 이렇게 홀대받는지 나는 정말 이해하기가 힘들다. 세월호 참사에서 본 것처럼 직업적 열정보다 책임추궁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는 사회에서, 어쩌면 직업적 열정과 사명감을 가장 강력하게 발휘하는 유일한 집단이 소방관 아닌가.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홀대받는 걸까. 마치 '너희가 원해서 하는 건데 뭘 더 챙겨줘야 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신형 의복 보급을 기준으로 말하자면 군대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내가 군생활한 2011년은 신형(디지털) 군복이 이제 막 보급되던 시기였다. 아마 10월 즈음부터 보급된 것 같은데, 이상한 건 위아래 세트를 맞춰 입고 들어오는 애들이 없었다는 점이다. 간신히 야상만 보급받고 들어오기 일쑤고, 그나마도 못 받고 구형을 받은 애들도 더러 있었다. 왜 그런가 했더니, 보급량이 부족하단다. 그래서 누구는 잘 받고 들어오는데, 누구는 야상만 받는 거란다. 그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신병들이 야상만 입고 들어올 그때도, 간부들은 전원 신형으로 완벽하게 교체했다는 건 분명하게 안다.


최근에 경찰이 의복을 교체했다. 기존 하얀색 옷에서 진한 파란색 옷으로. 처음 교체 뉴스를 보고나서 얼마 안 있어 무심코 광화문에 나갔다가, 모든 경찰들이, 심지어 의경까지도, 파란색 신형 의복을 입은 걸 알아차렸다. 소방관과 군인장병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었던 신속함과 풍족함이 경찰집단에겐 있었다. 이 차이는 어디서 발생하는가. 국가가 소방관과 군인장병은 홀대하면서 경찰만은 애지중지하는 그 까닭은 뭔가.




집을 나서면 열에 여섯번 정도로 보이는 사람이 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다. 40대쯤 돼보이는 남성. 남성치고는 장발에 수염을 길렀다. 그 남성은 말 그대로 서성인다. 아무 의도도 없어 보인다. 집앞 의자에 앉아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집앞 뜰에 자란 식물들을 들여다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집앞 재떨이 옆에서 담배를 태우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누가 봐도 한량 그 자체.


그냥 좀 이상한 사람인가보다 하고 말았다. 그런데 어느날엔가 집을 나섰는데, 이 사람이 의자에 앉아 있다. 여기까지는 일상. 그런데 그의 손이 분주히 뭔가를 하고 있다. 들린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의 손은 무언가를 세다가 이따금 미는 것 같았고, 그의 입은 무언가를 열심히 계산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주판을 튕기듯이.


그걸 봤을 때 문득, 소설이 이렇게 탄생하는 건가 싶었다. 내가 관찰한 그의 모습에다가 상상력이라는 살을 붙여 이야기를 하나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내 짧은 관찰을 종합하자면, 은행에서 촉망받으며 일하다가 디지털 시대에 진입해 가진 기술이 무용지물되어 속절없이 쫓겨난 뒤 아내, 또는 부모에 얹혀 사는 우리 시대의 한 남성상이 그려진 것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고. 하지만 그의 주판 튕기는 모습이 이전에 본 무의미한 모습들과는 어딘가 조금 달랐기에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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