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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young Mar 26. 2019

바람 불어 추운 날 성북동

추사 김정희 전, 길상사, 수연산방



 4월이 다가오자 꽃샘추위는 더 성깔을 내고 있다.

봄 차림을 했다가 다시 겨울 패딩에 운동화로 바꾸는 부산한 외출 채비를 하고 버스에 오른다.

20분만 참으면 명동... 나의 청춘이 있는 명동은 그냥 스쳐 지나가도 항상 반가운 곳 ㅎ

언젠가 여유 있게 내려 그때 먹던 칼국수를 꼭 다시 먹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오늘은 추사 김정희의 서체와 문인화를 보러 성북동 미술관을 가는 날이다,

친구와 날 따뜻해지는 봄날을 벼루다가 더 추운 날을 고르게 됐다.

 그래도 성북동 곳곳엔 이미 담장을 넘는 노란 개나리 떼를 보는 즐거움도 있고   

문 열린 길상사 따뜻한 툇마루에서 나타사와 백석, 자야의 사랑이야기 같은 것을 잠시 하기도 한다.

그러다 불현듯 성북동 오르막길 찬 바람 속에서

 형형한 눈빛의 한용운도 만나고





상허 이 태준의 집, 지금은 수연산방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성북동의 아름다운 찻집


 내가 민화를 그리는 초보 화가쯤으로 아는 동호회의 새 친구는

이 고택의 주인 이야기를 열심히 해준다. 나는 그것이 좀 재미있어서 당분간 그러고 싶다.

 그러다 서영은과 김채원의 기억이 났다.

플라자 호텔 커피숍에서 보던 서영은, 김채원은 목 끝까지 채운 서영은의 셔츠를 매번 풀어놓지만

그녀는 매번 그 차림으로 다시 돌아와 있노라는... 그림을 전공한 김채원의 이미지즘 작품들에  사로 잡혔던 젊은 날의 나는 요즘 목 채운 서영은을 오히려 닮아 는 것도 같다  

새 작품 인터뷰의 몇 해 전 그녀는 이제 셔츠를 목 깊이 열고 밝은 빛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지

 아무튼 김채원의 젊은 날을 닮은 서울 토박이 친구의 구인회 이야기를 그의 자화상이  걸린 집필실같은

아랫채에서  오래도록 듣다가 느지막이 추사의 전시장에 도착했다.

입구에서부터 진한(?) 먹향이 몸가짐을 바르게 한다.

 서릿발 같은 그의 세한도를 알길래...

 고즈넉한 기운이 서린 추사의 방, 서체 속에 선택된 중국의 명인들이나 선생의 시 하나하나가

청빈함의 여유로 가득하여 마음에 흔들림을 준다. 오는길에 들렀던 무소유의 성인도 그러하고

이 분들의 고단한 삶 속에 기품으로 어우러져 있는 미학우리 삶의 척도는 무엇일까 되묻게 한다.

  

  M버스를 기다리다 잠깐 명동성당을 걸었다.

 학생운동 있던 20대   

  기숙사 버스를 타고 나와 이 성당을 던 새벽들이 있었다.

 우리의 생이 참 순간이라는 느낌이 드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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