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young Feb 19. 2022

황동규의  마크 로스코

겨울, 눈온 뒤


  1월부터 제법 추워져 겨울다워졌다.

 두세 번 눈까지 퍼부은 탓에 아파트 창밖 풍경도 그럴싸 해져 간혹 창틀 위에 맨 발로 올라가

 쌓인 눈을 내다보는 것만으로 바깥출입 없이 일주일을 버텼.

 아파트 정원에 하얗게 눈길이 만들어지고 키 큰 소나무들도 숨기고 있던 눈 뭉치들을 털어내는

 햇살 좋은 아침, 거실 안에서의 게으름을  외출에 나서 보기로 한다.

 좋은 에스프레소 한 잔도 간절했고 남겨놓은 해산물을 해결해 줄 미나리 한 단도 늘은 꼭 사야 했.


  상가까지 가는 눈길이 꽤 멀어 쨍한 공기에 운동부족이었던 온몸의 세포들이 모두 깨어나는 

 마스크를 내리고 찬 공기를 기분 좋게 들이마시며 걷는다.

  여긴 나무가 많아 언제나 좋은 곳...!

 슈퍼 옆 오래된 동네 서점은 요즘 카페처럼 인테리어가 바뀐 후 젊은 주부들과 코로나로 시설

 못 간 아이들의 친목 장터가 되어 있다.

 나도 장바구니를 옆에 낀 채 새로 나온 문학상 수상집 몇 권을 스캔하다 한 켠에 쌓아 놓은 선명한

 색감의 새해 달력 뭉치를 발견했다. 마크 로스코다.

 12편색채로 구성된, 어차피 화가의 퀄리티를 저평가시킬 수 있는 복사판의 색면화를

 보겠지만 사기로 결정한다.

 며칠 전 이곳 서가에서 새로 나온 황동규의 시집 한 권을 만났었다.


   '마지막 시집이라고 쓰려다 만다. 앞으로도 시를 쓰겠지만

    그 시들은 유고집에 들어갈 공산이 크다.는 건 맞는 말이다.... '

 시인의 서문을 읽으며 내가 시를 읽지 않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아하던 황동규와 마종기의  시집 두 권을 장바구니에 담고 며칠간은 눈 내리는 머리맡에

 다시 읽게 되던 시.. 그리고 마크 로스코의 작품들.

  

                                                           

      ' 진한 노을 '                                                                   Mark Rothko,       Red

 

태안 앞 바다를 꽉 채운 노을,

진하고 진하다.

몸 놀리고 싶어하는 섬들과 일렁이려는 바다를

지그시 누르고 있다.

진하다.

배 한 척 검은 색으로 지나가고

물새 몇 펄럭이며 검은 색으로 빠져 나온다.

 

노을의 절창,

생애 마지막 화면 가득 노을을 칠하던

마크 로스코가 이제 더할 게 없어! 붓 던지고

손목 동맥에 면도날 올려놓는 순간이다.

잠깐, 아직 손목 긋지 마시게.

그 화면 속엔 내 노을도 들어있네

이제 더 할 말 없어 붓 꺾으려는 나의 마음을

몇 번이고 고쳐 먹게 한 진한 노을이네.

     


 마크 로스코의 죽음 앞둔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이유 없이 차오르는 눈물 그렁해지던 경험이 있다. 

그런 것들은 삶의 과정 어디쯤을 걸어봐 할 공감인 지는 모르지만

젊은 날의 황동규 시에도 연구실 벽에 걸린 마크 로스코의 그림 이야기는 있었고 그때의 나는 그것이

내가 아는 어떤 색감의 마크 롯코일까 간혹 궁금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젠 이 시집이 마지막이 아니길 빌 수밖에 없는 시간이 맞다. 

 



매거진의 이전글 6월 서해 군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