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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young Feb 19. 2022

황동규의  마크 로스코

겨울, 눈온 뒤


  1월부터 제법 추워져 겨울다워졌다.

 두세 번 눈까지 퍼부은 탓에 아파트 창밖 풍경도 그럴싸 해져 간혹 창틀 위에 맨 발로 올라가

 쌓인 눈을 내다보는 것만으로 바깥출입 없이 일주일을 버텼.

 아파트 정원에 하얗게 눈길이 만들어지고 키 큰 소나무들도 숨기고 있던 눈 뭉치들을 털어내는

 햇살 좋은 아침, 거실 안에서의 게으름을  외출에 나서 보기로 한다.

 좋은 에스프레소 한 잔도 간절했고 남겨놓은 해산물을 해결해 줄 미나리 한 단도 늘은 꼭 사야 했.


  상가까지 가는 눈길은 꽤 멀어 쨍한 공기에 운동부족이었던 온몸의 세포들이 모두 깨어나는 

 마스크를 내리고 찬 공기를 기분 좋게 들이마시며 걷는다.

  여긴 나무가 많아 언제나 좋은 곳...!

 슈퍼 옆 오래된 동네 서점은 요즘 카페처럼 인테리어가 바뀐 후 젊은 주부들과 코로나로 시설

 못 간 아이들의 친목 장터가 되어 있다.

 나도 장바구니를 옆에 낀 채 새로 나온 문학상 수상집 몇 권을 스캔하다 한 켠에 쌓아 놓은 선명한

 색감의 새해 달력 뭉치를 발견했다. 마크 로스코다.

 12편색채로 구성된, 어차피 화가의 퀄리티를 저평가시킬 수 있는 복사판의 색면화를

 보겠지만 사기로 결정한다.

 며칠 전 이곳 서가에서 새로 나온 황동규의 시집 한 권을 만났었다.


   '마지막 시집이라고 쓰려다 만다. 앞으로도 시를 쓰겠지만

    그 시들은 유고집에 들어갈 공산이 크다.는 건 맞는 말이다.... '

 시인의 서문을 읽으며 내가 시를 읽지 않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깨닫는다. 

 좋아하던 황동규와 마종기의  시집 두 권을 장바구니에 담고 며칠간은 눈 내리는 머리맡에

 다시 읽게 되던 시.. 그리고 마크 로스코의 작품들.

  

                                                           

      ' 진한 노을 '                                                                       Mark Rothko

         .

         .

         .

노을의 절창,

생애 마지막 화면 가득 노을을 칠하던

마크 로스코가 이제 더할 게 없어! 붓 던지고

손목 동맥에 면도날 올려놓는 순간이다.

잠깐, 아직 손목 긋지 마시게.

그 화면 속엔 내 노을도 들어있네

이제 더 할 말 없어 붓 꺾으려는 나의 마음을

몇 번이고 고쳐 먹게 한 진한 노을이네.

     

 마크 로스코의 죽음 앞둔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 보다 이유 없이 차오르는 눈물 그렁해지던

 경험이 있다. 그런 것들은 삶의 과정 어디쯤을

걸어야  공감인 지는 모르지만

젊은 날의 황동규 시에도 연구실 벽에 걸린 마크 로스코의 그림 이야기는 있었고 그때의 나는 그것이

내가 아는 어떤 색감의 마크 롯코일까 간혹 궁금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젠 이 시집이 그의 마지막이 아니길 빌 수밖에 없는 시간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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