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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young Mar 08. 2024

아무 일도 없던 섬

거제 내도의 동백,  통영의 봄


 붉은 동백 한번 제대로 보는 일이 이렇게 힘든 것인 줄 몰랐네.

몇 해 전부터 기회를 보며 서해안 마량리로, 3천 그루 군락을 이룬 선운사로 개화 소문을 맞춰

가봤지만 절정의 순간을 놓치고 먼 여행길에 지역 식도락만 즐기 오곤 했다.

 오래전 친구의 연애사에서 가져온 눈물처럼 후두둑 졌다는 선운사 동백의 잎 한 아름을 보긴 했는데

그땐 너무 젊어 강렬한 꽃무리와 초록의 견고한 잎들이 지닌 기품이나 낙화의 퍼포먼스가 주는

의미몰랐다. 인간은 한 번의 생을 살아 그 틈틈이 사랑하고 일하고 자식도 기른다.

이제 살아온 날들보다 남은 날이 적음을 알면서 꽃대궁채 무거운 머리를 미련 없이 툭툭 던져

생을 마감하는 동백꽃의 마무리가 남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이해인 수녀님의  흐르듯 낙화하는 동백을 보며 쓰신 시 한 구절

   "사랑하면서도 상처를 거부하고

     편히 살고 싶은 생각들

     쌓이고 쌓이면 죄가 될 것 같아서... "

한평생 헌신삶을 사셨을 수녀님이 할 반성은 아니고 나같은 이기적 인간에겐 각성이 오는 구절이다.

사랑을 이야기한 수많은 시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로는 꽃 중에 으뜸이라니

내가 걷는 발아래 낙화의 흔적도 예사롭지 않아 산책길에 한 컷...!



 거제 내도는 추운 겨울을 빨리 벗어나는 남쪽바다에서도 깊숙이 들어가는,

그래서 이른 동백이 만개할 거라는 토종 동백의 서식처라는 기대감으로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활활타는 개화를 볼 거라 기대하며 따라 나선 여행지였다.

구조라항에서 작은 배를 타고 선장님의 사투리 멘트를 즐기며 들어선 내도는 정말 단 한 채의

노란색 펜션만 가진 외딴 곳이었다. 우리가 무슨 짓을 벌여도 모를 듯한 이곳. 건강한 마음을 가진 이들의

작은 음악회를 즐기고 숯불 바베큐도 얻어먹으며 해 질 녘 아름다운 바다를 품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동백은 이미 지고 그 흔적들만 길 위에 붉네. 내가 놓치고 산 어떤 시간들처럼...분분한 낙화!




  바다인 지 호수인 지 모를 듯한(파도 소리조차 없던) 물가의 침실에서 하룻밤을 새고 아침녘

커피 타임에 우리는 좋은 사람과 여기 오고 싶다는 헛소리를 하다가 선배에게 듣는다.

  "좋은 놈은 없다. 좀 덜 나쁜 놈이 있을 뿐... " 멘토 같은 진리에 항상 감탄을 ㅎ...!

그 후 우리는 남해 바다 특산물로 장보기나 잘해서 윗 지방에 귀한 콩잎 장아찌, 멍게 젓갈, 좋은

해초같은 것들로 집의 식탁을 며칠 간 행복하게 했다.

 이렇게 통영의 봄은 어시장에서 온다. 박경리, 청마 유치환, 윤이상 같은 수많은 문인, 예술가들을

배출한 곳이지만 그것보다 곧 있을 도다리 쑥국이나 멸치 쌈밥 같은 미각으로 이곳을 더 기억하곤 하겠지.


이번에는 지역 시장통에서 배를 불렸다.

남쪽 섬 거제와 통영...!,

어릴 적 고향 가까울 때는 잘 안 오던 곳을

오히려 몇 시간씩 달려서 찾아오고 있으니

사람 사는   재밌다.

 완벽한 경상도 억양의, 내겐 그리움 같은

아줌마들이 끊임없이 내다 주는 밑반찬과

어시장에서 갓 잡은 싱싱하고 찰진 회를

생미역 같은 진한 해초들에 곁들여 먹고

금세 1kg의 몸무게를 리고 왔다. 


 새로운 지도안을 준비하며 밤낮이 바뀌어서 새벽에야 잠자리에 들던 몸에

제대로 영양분을 좀 줬나 싶다.

 넬슨이 연주한 쇼팽의 피아노 1,2번을 듣다 듣다 잠들던 젊은 날의 그 밤들이나

죽을 만큼 사는 게 타이트하던 시절의 지구촌 여행길도 휴식과 쾌락보다 명인들의 유적지를 찾아

헤매던 그 가치는 뭐였을까?

요즘같이 나를 내려 놓고 무심히 즐긴 적이 없네.

인생 선배 한 분이 옆자리서 건네준 중국 한시의 몇 구절이 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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