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곁에 나무처럼 머무르기
17개월 아들은 아직 말을 못한다. 엄마라는 소리조차 우연히 낼 뿐이다. 그러나 그런 아들이 걱정되지는 않는다. 방금도 아들은 겉옷과 양말을 들고 내 방으로 걸어들어왔다. 산책가자는 의미다. 마실을 나갔더니 따스한 햇살 아래 금세 곤히 잠들었다. 감기로 인해 잠을 설쳤더니 부족한 잠을 채우고 싶었나보다.
비록 말은 못하지만 아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손을 내밀고, 눈을 마주치고, 감정이 섞인 소리도 낸다. 자신의 욕구를 능동적으로 해결하며 필요한 경우 주변에 도움을 요청한다. 만약 아들이 말을 일찍 익히면 음성 기호로 소통하는 새로운 세상을 마주할 수 있겠지만, 늦게 익히는 만큼 다른 측면의 탐색과 성장에 몰입할 수 있다.
걸음마를 시작하자마자 온 세상을 자유롭게 돌아다닌 아들은 큰 움직임뿐만 아니라 세밀한 움직임도 꽤나 능숙하다. 내 손을 잡고 급한 경사길을 오르거나 놀이터의 암벽을 타고, 높은 미끄럼틀도 두려움 없이 내려온다. 블럭을 자유자재로 쌓고 쌀알만큼 작은 물건도 잘 줍는다. 부모 없이도 고독한 시간을 즐기며 홀로 책을 읽거나 야경을 감상한다.
아들이 언어 외 영역에서 유별나게 대단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아이들은 놀이를 비롯한 삶을 통해 다방면에서 빠르게 성장한다. 그러나 어른들은 자신들의 관점에서 중요한 언어 구사 능력에 초점을 맞추곤 한다. 마치 그 능력을 빨리 키우지 않는다면 큰일나는 것처럼, 또는 또래에 비해 능력이 빨리 성장한다면 미래의 성공 확률이 높아지는 것처럼 여긴다. 더 나아가 영어라도 익히면 마치 아이가 탁월한 언어 감각이 있는 것이 아닐까 반색한다. 아이에게는 그저 구체물과 음성기호를 연결한 정도이거나 기억을 되새겨 음성화했을 뿐일 수도 있는 것인데 말이다.
인간이 가진 능력들을 세분화하는 최근 경향과는 달리 인간의 능력은 언제나 복합적으로 구성되고 발현된다. 따라서 아이를 살필 때에는 단일한 능력 영역이나 특정 사례만으로 판단하기보다는 아이 생활 전반을 고려해야 한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어떤 면이 빠르거나 느리다고 일희일비할 필요 없이 충분히 기다려주는 동시에 아이가 꾸준히 성장을 위한 자극을 찾아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편이 좋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등학교로 올라가며 사회에서 요구하는 성취 수준은 각양각색의 인간과 달리 점점 표준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만큼은 세상이 마련한 기준에 맞춰 아이를 판단하기보다는, 아이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며 그의 울타리이자 그늘이자 디딤돌이자 빛으로 머물러주는 편이 좋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부모가 먼저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오래된 질문에 깊이 머물러 있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