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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항수 Jun 23. 2016

맨발로 집을 뛰쳐나간 아이

2014. 7. 10.

  "Y가 화가 나서 집을 뛰쳐나갔대요."

  Y의 어머니와 통화를 마친 동료교사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Y는 우리 반 P의 오빠다. 활달하고 자기표현이 뚜렷하지만 분노조절을 힘들어하는 아이다. 그런 아이가 집을 뛰쳐나갔다니.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곧장 동료교사와 함께 Y의 집 근처로 갔다. 멀리 어머니와 P가 동네 분들에게 Y의 행방을 묻는 모습이 보였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봤지만 Y를 본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그 길로 각자 흩어져 Y를 찾기 시작했다.


  '분에 못 이겨 뛰쳐나갔겠지. 맨발로 멀리는 못 갔을 테고. 근처 조용한 곳에 있을 텐데.'


  언덕을 깎아 만든 오래된 아파트 단지라 험하고 비탈진 곳이 제법 많았다. 혹시나 발을 헛디디거나 순간의 충동에 떨어지진 않았을까 걱정이었다. 그렇게 찾기를 십여분. 주변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떨어지듯 놓인 계단에서 웅크린 채 울고 있는 Y를 발견했다. 이렇게 빨리 찾게 되다니, 천만다행이었다.


  Y가 들리지 않을 위치로 가서 어머니와 동료교사에게 연락하고, 나에게 둘만 있을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선 조용히 Y의 옆에 앉아 어깨를 끌어안았다. 어깨까지 들썩이며 울던 Y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이내 다시 몸을 작게 말아 울기 시작했다. 햇살은 강렬하게 내리쬐고 바람은 마음까지 시원해지도록 우리를 감쌌다. 얼마나 바람에 눈물을 날렸을까. 어느새 Y의 떨림이 많이 가라앉았다.


  나가라는 어머니의 말에 화가 나서 뛰쳐나왔단다. 부모님이 자신에게 뭐라고 할 때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했다. 그랬구나. 정말 속상했겠다. 솔직히 나에게는 Y의 분노가 얼마나 깊은지, 그것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자격은 없다. 다만 나를 믿어주는 아이를 나도 믿어줄 뿐. P의 새 담임이 나란 것을 알고 어떤 선생님일까 걱정하던 어머니에게 그 선생님이라면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해주던 Y였다.


  얼마간의 대화가 오가고 Y의 마음이 조금 열리는 것을 느꼈다. 내가 찾아와서 놀랬지 하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 말고도 담임선생님, 어머니, 동생이 너를 걱정하며 찾고 있다고 말했다. Y는 담임선생님 얼굴을 보기가 부끄럽다고 했다. 타일러 근처 정자의 그늘에서 쉬게 하고 동료교사를 불렀다. 함께 Y의 곁에서 바람에 몸을 맡겼다. 전날 찾아온 태풍이 두고 간 선물이 무척 고마웠다. 


  P가 음료수를 들고 우리를 찾았다. 어머니가 보낸 것이리라. Y가 담임선생님과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켰다. P와 어깨동무를 하고 걸어가며 조심히 물었다.


  "많이 놀랐니?"

  "네."

  "이럴 때마다 무척 불안하지?"

  "정말 무서워요."

  "그럴 땐 어떻게 하니?"

  "그냥 있어요."

  P 특유의 무덤덤한 말투였지만 그 안의 불안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선생님이 최고지?"

  그제야 해맑게 웃는 P다. 이렇게 웃는 날이 많아야 할 텐데.


  담벼락을 돌자 어머니께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앉아 계셨다.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말씀드리고선 다시 Y에게로 갔다. Y는 담임 선생님과의 대화로 마음이 많이 풀려있었다. 그럼에도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는 상태였다. 고개를 떨구고 땅을 바라보고 있는 Y의 앞에 앉아 눈을 맞췄다.


  "집으로 들어가기에는 걱정되지? 혹시 내가 어머니께 못할 말을 할까, 방금의 상황이 반복되지 않을까 두려울 테고."

  나지막이 대답하는 Y에게 이어 말했다.


  "걱정 마라. 선생님은 Y에게 힘이 있다고 믿는다. 잘 할 거라 생각해. 너에게는 이렇게 너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잖니. 동생도 너를 많이 걱정하더라."

  그렁그렁 눈물을 단 Y의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 하나만큼은 알아두렴. 네가 만약 어떤 사람이 싫다면, 그 사람을 닮지 마라. 네가 어떤 사람을 싫어한다면, 너 자신도 모르게 그 사람을 닮아가게 될 거야. 그렇지 않도록 항상 노력해야 한다."


  이 말을 끝으로 Y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집을 향해 걸어가는 Y의 양 옆에 나와 동료교사가 함께 있었다. 멀리 어머니와 P가 보였다. 나는 조용히 Y에게 힘내라고 했다. 어머니께서는 Y를 와락 안더니 미안하다며 우셨다. 둘만의 시간을 위해 우리는 멀찍이 떨어졌다. 동료교사가 나에게 정말 고맙다고 했다. 나는 아니라고 답했다. 정말 그랬다. 이번 일로 내가 느낀 것이 무척 많았으니.


  어머니와 Y가 손을 잡은 채 다가와 고맙다며 인사를 했다. Y의 표정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동료교사가 Y를 안고서 너도 안아야지 하며 다그치자 Y도 슬며시 동료교사를 껴안았다. 그 모습을 본 어머니께서 아까 자신을 안아주지 않았다면서 농을 하셨다. 나는 Y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다음에 볼 때는 밝은 얼굴로 인사하자고 했다. 꾸벅 인사하는 Y와 가족을 뒤로하고 언덕길을 내려갔다.


  여전히 햇살은 따사로이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기분 좋은 바람과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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