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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이권 May 31. 2016

처가살이와 시집살이

5월 연휴를 맞아 가족 및 이웃과 함께 경주로 놀러갔다. 평소에는 내가 여행 일정을 계획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이웃이 모든 일정과 식사장소를 결정하였다. 모처럼 아무런 생각 없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여행을 시작하였다. 경주의 첫 일정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 두 가문이 약 500여 년간 대를 이어 살고 있는 양동마을이었다. 오랜 전통을 간직한 고택들과 실제 거주하는 정주유산으로 가치가 높아 양동마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요즘 세상에 어떻게 이런 마을이 있을 수 있을까 의아했고, 한편으로 이런 장소를 아직도 몰랐던 나를 한탄했다.


양동마을에서 거주하시는 해설사 한 분이 마을 입구에서 우리를 맞이하였다. 십 수 년 전에 이 마을로 시집왔고, 이 마을의 한 초가집에 살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이 날의 마지막 해설이고 우리만 있는 단출한 일행이라 그런지, 이 분은 무척 친절히 안내해 주었다.  

    

양동마을이 오늘날과 같은 성씨 구조를 가지게 된 시작은 양민공 손소가 혼인을 하여 처가살이를 하면서 부터이다. 여강 이씨는 찬성공 이번이 손소의 사위가 되면서부터라고 설명해주셨다. 그러면서 해설사는 이곳은 외손이 잘되는 마을이라고 덧붙였다.


양동마을에서는 남자가 장가가서 처가살이를 하다가 손씨와 이씨의 집성촌이 되었다. 이와는 반대로 여자가 시집와서 시집살이 하는 경우도 흔하다. 최근에는 신혼부부가 양가에서 독립하여 신혼집을 차리기도 한다. 이중 어느 제도가 우리에게 자연스러운가? 그리고 처가살이와 시집살이를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처가살이와 시집살이는 동물 행동생태학에서도 혼란스럽기도 하고 재미있는 주제이다. 우리 사람이 속한 포유류는 처가살이가 아주 흔하다. 이에 비해 새들에서는 암컷이 태어난 곳을 떠나서 수컷의 영역으로 가는 시집살이가 압도적으로 많다. 참고로 새들은 한 둥지에 한 쌍만 번식하므로 암컷이 시어머니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처가살이와 시집살이를 가장 명쾌하게 설명했던 분은 폴 그린우드 박사님이다. 이 분은 처가살이와 시집살이를 짝짓기 체계와 연관하여 설명하였다. 짝짓기 체계는 한 번식기간 동안 배우자의 수를 의미하며, 일부일처제, 일부다처제, 다부다처제 등이 쉽게 발견된다. 1980년 '동물 행동'에 발표한 그린우드의 논문은 이 저널에서 지금까지 가장 많은 인용횟수를 자랑한다.


새들은 대부분 일부일처제를 유지한다. 일부일처제에서는 암컷이 영역을 가지고 있는 수컷을 선호한다. 수컷은 영역을 먼저 확보해야 하고, 이것을 이용하여 암컷을 유인한다. 보통 영역을 가진 수컷은 한정되어 있고, 암컷은 영역이 있는 수컷을 찾아 멀리 분산한다. 이에 비해 수컷은 빈 영역이 나타나길 기다리거나, 경쟁으로 영역을 차지해야 한다. 그래서 일부일처제에서는 수컷은 태어난 장소에 남아있는 경향이 강하고, 암컷은 수컷보다 멀리 분산한다.


일부다처제나 다부다처제를 주로 유지하는 포유류 수컷은 한 번식기간 동안 여러 마리의 암컷을 확보하려고 노력한다. 수컷들은 서로 경쟁하여 암컷들을 유인하고, 확보한 암컷들을 다른 수컷으로부터 지키려고 한다. 그 결과 소수의 수컷들이 많은 수의 암컷들을 독점하게 된다. 이런 짝짓기 체계에서는 많은 수컷들이 태어난 장소에서 번식의 기회가 별로 없다. 그래서 수컷들은 대부분 태어난 장소를 떠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비해 암컷은 태어난 장소 근처에서 배우자를 구한다.


그럼 사람에게도 뚜렷한 경향이 나타나는가? 유전자 분석을 통한 결과에 의하면 사람은 시집살이 아주 흔하다고 한결같이 보여준다. 그러나 시집살이는 인류가 농경사회로 들어서면서부터 뚜렷해졌고, 그 이전에 존재했던 수렵채집사회에서는 확실한 경향을 발견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수렵채집사회에서는 처가살이와 시집살이가 비슷하게 나타난다.


만약 그린우드의 이론이 사람에게도 맞는다면 인류는 농경사회로 넘어가면서 일부일처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농경사회에서는 토지가 없으면 남자는 배우자를 구하기 어렵다. 그래서 부모는 집안의 전답을 아들들에게 물려준다. 그 결과 아들은 부모의 집이나 가까운 장소에서 살게 되고, 시집살이가 흔하게 나타난다.


최근 친족 간의 협동이 처가살이나 시집살이를 결정하는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면 농경사회에서는 모내기나 김매기와 같이 많은 일손이 동시에 필요한 경우가 많다. 이때 믿을만한 남자 형제들이 옆에 있다면 한결 수월하다. 요즘 아내와 남편 모두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럴 경우 육아는 여자에게 많은 어려움을 준다. 그래서 여자는 육아의 도움을 위해 친정 부모님이나 자매와 같이 친족 근처에 살림집을 차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례는 친족들이 처가살이 또는 시집살이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양동마을의 처가살이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양민공 손소가 양동으로 이주할 당시 처가살이는 쉽게 찾아볼 순 있지만 소수 이었고, 사회 전반적으로는 시집살이가 다수일 수 있다. 비슷한 해석으로 우리의 짝짓기 체계는 엄밀한 일주일처제와는 거리가 멀다. 농경사회에서 일부일처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하더라도 다양한 짝짓기 체계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다양성은 처가살이와 시집살이가 동시에 존재하게 할 수 있게 한다.



이 글은 2016년 5월 31일 경향신문 <장이권의 자연생태 탐사기>에 발표되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5302101005&code=990100


탐사일: 2016년 5월 6일

탐사장소: 경주양동마을



양동마을의 어귀
초가집. 초가지붕을 올리기 위해서 매년 마을 청년들이
은행나무 암그루와 수그루.. 수그루는 몇 년 전에 벼락을 맞아 거의 죽었으나 최근 살아나고 있다.
관가정.
관가정의 쪽문. 주로 아녀자가 이용하는 문으로 부엌으로 곧바로 연결되어 있다.
성주봉과 양동마을의 초입
성주봉과 양동마을 초입이 초가지붕 너머로 보인다.
무첨당
성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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