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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이권 May 26. 2017

두루미와 농사짓는 사람

방학이면 실험실의 식구가 늘어난다. 신입 대학원생들, 실험실에서 겨울방학 동안 연구에 참여하는 학부생들, 연구원들로 실험실이 북적인다. 이들은 실험실 생활을 즐기지만, 이들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은 실험실 야외 여행이다. 평소에 밥만 같이 먹다가, 드디어 잠도 같이 자는 진정한 식구가 되는 순간이다. 이번에는 파주의 임진강-태풍전망대-백마고지전적지-철원으로 이어지는 여정이었다. 주로 겨울에 우리나라에서 월동하는 철새들을 찾아보는 여행이었다.

  

여행 두 번째 날 아침 철원에서 우리들에게 두루미의 세계를 안내해줄 분이 나타났다. 국방색 등산복 외투에 진한 네이비 색의 바지 차림이었다. 이분은 자신을 두루미와 농사짓는 평범한 농부라고 소개하였다. 최근 문제가 되는 조류독감 때문에 이 분은 우리를 관광이 허용되는 지역으로 안내했다.     


우리가 처음으로 멈춘 곳은 굽이쳐 돌아가는 한탄강의 절벽이었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폭이 넓은 한탄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분은 강의 여울목을 가리키며 이런 곳이 두루미가 유숙하기 좋은 장소라고 알려줬다. 이와 같이 두루미의 잠자리가 될 만한 곳이 한탄강에만 47개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8개 정도만 남아있을 뿐이다.

     

두루미는 잠자리를 정할 때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사람 키와 엇비슷한 두루미라도 고양이보다 살짝 큰 삵에게 포식당할 수 있다. 그래서 두루미는 포식자를 멀리서 탐지할 수 있도록 탁 트인 장소를 좋아한다. 수심이 깊은 곳도 잠자리로 적당하지 않다. 두루미는 몸무게가 상당히 나가는 큰 새이기 때문에 이륙할 때 세네 발자국을 뛰어서 상승한다. 발이 물속에 깊게 잠겨있으면 뛸 때 저항성이 커서 도망가기 힘들다. 그래서 두루미는 물이 발목 아래쪽만 잠기는 여울목을 잠자리로 선호한다.  

   

모든 조건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포식자에게 안전한 잠자리는 없다. 그래서 두루미는 잠을 자면서도 계속해서 망을 본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두루미가 '단일반구수면(unihemispheric sleep)'을 하기 때문이다. 돌고래에서 처음 알려진 단일반구수면은 한 번에 한쪽 뇌만 휴식을 취하고 다른 쪽 뇌는 의식이 있다. 돌고래는 사람과 같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숨을 쉬어야 한다. 잠을 잘 때도 정기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쉬어야 한다. 단일반구수면을 하기 때문에 돌고래는 잠을 자면서도 호흡을 할 수 있다. 물새들도 한 번에 한쪽 뇌만 휴식을 취하고, 다른 쪽 뇌는 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포식자를 경계한다.   

   

잠자리의 안전은 두루미가 월동 서식지를 결정할 때 한 가지 조건일 뿐이다. 잠자리와 더불어 먹이터가 근처에 있어야 한다. 우리를 안내하는 농부는 두루미가 좋아하는 잠자리와 풍부한 먹이를 제공하는 먹이터가 그 어떤 곳보다도 철원에 많이 남아 있다고 강조하신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탐사한 어느 두메산골 산비탈이 그런 장소이다. 이곳에는 샘통이 있어 추운 겨울에도 물이 흐르고, 자연지형을 따라 형성된 논들 곳곳에 둠벙이 있다. 농부는 바짝 마른논 안으로 우리의 시선을 돌렸다. 논에는 볏짚이 그대로 남겨져 있다. 볏짚에는 낟알이 있고 모두 두루미의 먹이이다.  

    

농부는 논둑을 가리켰다. 논둑 바로 옆에는 논을 에어쌓고 있는 도랑이 보였다. 이것을 '찬물받이'라고 하는데 산에서 내려온 물이 여기서 데워진 다음 논으로 들어간다. 논의 물이 마르면 논 안에 있는 수서 동물들이 찬물받이로 이동한다. 그러다가 논에 물이 차면 바로 수서 동물이 논 안쪽으로 이동한다. 샘통, 둠벙 그리고 찬물받이가 있는 논에는 겨울에도 어류나 양서류가 살고 있어 두루미에게 양질의 먹이를 제공한다.     

  

농부는 우리를 이끌고 조금 걸어 내려가다 멈추고 설명을 하였다. 멀리 두루미 가족들이 고개를 숙이고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걸어가다 멈추고 설명하기를 반복한다. 천천히 우리의 존재를 알려 두루미가 놀라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하늘에 두루미 가족이 우리 머리 위를 날아가고 있었다. 이 분은 두루미 가족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였다. 그러자 마치 화답이라도 하듯 두루미 가족이 다시 우리 쪽으로 선회하였다. 농부는 두루미들이 자기를 알아본다고 말한다.      


한 번은 이분이 다른 복장을 하고 남의 차에서 내린 적이 있었다. 그러자 놀란 두루미들이 일제히 도망가 버렸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차로 돌아가는데 차에 비친 모습을 보니 내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 이후로 이분은 수 십 년간 계속 오늘과 같은 차림으로 두루미에게 나타난다고 한다. 심지어 똑같은 외투가 13벌, 바지는 20벌이 있었다고 하신다.       


두루미와 농사짓는 사람들은 비록 쌀값은 떨어졌지만 존중받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추수하고 난 후 논에 볏짚을 남겨놓고, 논 둘레에 찬물받이를 유지시켜 두루미에게 잠자리와 먹이를 제공하는 배려를 실천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두루미가 찾아오는 논에서 농사짓는 삶이 행복하다고 믿는다. 후손들에게 두루미가 찾아오는 철원을 물려주고 싶어 한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 아빠가 되고 싶어 한다.



이 글은 2017년 3월 6일자 경향신문 <장이권의 자연생태 탐사기>에 발표되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306212501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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