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사진관에 들렀다. 증명사진을 찍을 일이 있었다. 그 가게는 내가 이 동네에 살아온 역사를 증명하는 곳이다. 십여 년간 이 동네에서 대로를 건너 저 집, 대로를 다시 건너 이 집, 대로 대각선 방향으로 그 집을 오가며 이사를 하는 동안 나는 이 사진관에서 매번 증명사진과 여권사진을 찍어왔다.
돌아보니 그때마다 특별한 순간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불과 보름 만에, 내 인생에서는 이십 년 만에 다시 파리를 가게 됐을 때, 오 년, 십 년 만에 재취업을 하게 됐을 때, 어느 여름날 더 덥고 습한 싱가포르로 가족여행을 가게 됐을 때 나는 어김없이 그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었다.
세월의 흐름 따라 나는 후덕해지고, 사진관 아저씨는 노쇠해갔다. 사진관은 몇 평 되지 않는 지하 공간인데 조용하게 유명세를 탄 곳이다. 한때는 인근 구청에서 여권사진 찍는 곳으로 추천하던 곳이라 하는데, 그 덕에 자식들을 강남, 일본으로 유학을 시키고 대학원까지 졸업시켰다는 아저씨의 은근한 자랑을 이해할 수 있다.
내가 그곳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아저씨의 삼삼하고 은은하고 소박한데도 참 근사한 인물사진 실력 때문이다. 아저씨 사진으로 보면 이상하게 카메라 안의 모든 사람이 선하고 순하게 보인다. 실제 그들이 얼마나 선한지 얼마나 괜찮은 사람들인지 알 수는 없는데, 아저씨 사진 속의 그들은 이상하리만큼 순박하고 아름답다.
언젠가부턴 유학파 사진작가인 그분의 아들이 그 사진관을 물려받게 되었나보다. 아저씨는 간간이 사진관에 들르는 것 같았다. 아드님의 솜씨 또한 작가님 특유의 세련된 감성이 묻어났던 거 같다. 어딘지 믿음직한 디지털 시대 작가님. 사진가라기보다 사진작가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화려한 프로필과 특유의 퉁명함도 신뢰를 더했다. 사진은 사진으로 보여줄 뿐, 살살거리는 마케팅이 중하진 않으니.
엊그제 다시 찾은 사진관에서 아저씨를 뵈었다. 단호하고 단단한 목소리에 비해 창백한 안색. 세월을 느끼게 했다. 사진을 찍고 가려는데, 책 한 권을 쥐어 주셨다. 눈이 동그래진 내게 아저씨는 말했다.
=내가 책을 하나 냈어, 내 거야. 특별히 주는 거야.
아, 우리는 십여 년간 간간이 만났지만 한 번도 단골이나 아는 사장님 간에 오갈 만한 살가운 알은척을 한 적이 없다. 나는 매번 처음 가는 사람처럼 굴고, 아저씨는 나를 뚫어지게 보면서도 찍고 인화하고 결제하는 이야기만 하셨다.
그의 자서전을 나만 특별히 받았다고 착각해서가 아니다. 그냥 아무 말 없이 십여 년을 오고 간 게 갑자기 죄송해졌다. 사진가가, 십여 년간 특별한 순간을 담으러 오는 손님을, 과연 몰라봤겠는가. 잘 지내셨냐는 인사 한 번 못 드린 나의 쑥쓰러움 혹은 무심함. 내가 그런 변변찮은 사람인 걸 들킨 기분 같은 거다.
집에 돌아와 한가한 어느 오후 아저씨 자서전을 읽었다. 듬성듬성 띄엄띄엄. 아저씨답게, 내가 십여 년간 느껴온 그분의 품성답게, 자부심이 넘쳤다. 그는 소박한 것들을 사랑하며 단단한 소신을 가지고 소소한 삶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이란 일을 하게 해 준 운명의 행운에 감사하고 사진가 모임에서 만난 이들과의 유대와 신의를 최고로 지키며 아내와 자식 가족에 대한 고마움과 자랑스러움을 드러내며. 그리고 지금도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서 무언가를 배웠다고... 기록에 기록을 더하며.
뭔가, 설명하기 어렵다.
아저씨와 아저씨의 사진, 그리고 아저씨의 인생.
프로 사진가이지만
글로는 어딘지 아마추어스러운,
그런데 글 쓰는 작가가 아닌 이가
삶을 통찰하는 힘이 진실을 전달하는 힘이
전문작가보다 굳세고 날카롭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책이었다.
아저씨의 지난 삶을 축하드린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이름 없는 작가가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은 몰라도 이제 나는 안다.
그리고 이것을 신께서는 아실 것이다.
그것이 나의 하느님, 내가 사랑하는 하느님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