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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andol Mar 03. 2021

오어지(晤漁池) 버드나무

오어지 둘레길에서 만난 돌과 땅과 물과 나무

저수지를 따라 도는 둘레길 거리는 7km다.  트레킹 하듯 걷는다면 두 시간 안에 한 바퀴 돌겠지만, 여기저기 한눈을 팔다 보니 시간이 적잖이 걸렸다.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은 구불구불 길을 따라 걷는데, 풍경이 좋아서. 이제 막 진달래가 피고 생강나무 노란 꽃도 보일 듯 말 듯했다. 산 쪽으로도 나쁘지 않았지만, 특히 가물어 물이 빠지고서 드러난 땅에 자라는 버드나무들이 눈길을 빼앗았다. 저수지 가득 물이 찼다면 아마 청송 '주산지' 같은 풍경이 아니었을까 짐작했다. 영화 봄여름가을겨울에서처럼 아랫도리가 물에 잠긴 나무들이 연둣빛 이파리를 가득 피운 그런 장면. (원래 저수지 외곽 쪽으로는 물이 많지 않은 그런 곳인지도 모르겠지만, 마치 건천처럼)


이곳 '오어지'에서는 물이 빠진 터라 가까이 가서 살펴볼 수 있었다.  나무들은 저수지 가장자리 얕은 곳에 군락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함께 살고 있다. 버드나무의 특징으로 볼 때 이들은 어쩌면 부모형제가 아니라 같은 유전자를 가진 한 몸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거칠기도 하고 푸석푸석하기도 한 화성의 표면 같은 바닥을 걸어 다니며 나무들을 살폈다. 화성을 탐사하는 우주인이라면 아마 잠깐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으리라. '아! 이건 뭐지?!'

물이 빠지면서 나무가 선 곳의 흙도 함께 빠져나가 뿌리가 드러나 있다. 이가 빠진 자리의 시커먼 함몰처럼 뚫린 구멍을 보자면 그 속이 자꾸 궁금했다. 잎을 모두 떨어뜨리고 구불구불하게 자라난 겨울나무의 가지가 거친 바닥과 잘 어울린다. 그러고 보니 일반적인 저수지나 호수처럼 둥근 형태가 아니라 길쭉하고 구불구불한 테두리를 가진 이 저수지의 모양과도 닮은 것 같다. 수형만 보자면 일반적인 버드나무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용버들처럼 구불구불한 그런 모습이었으면 더 잘 어울리는 풍경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아무튼 이곳의 버드나무들은 밝고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나름의 맛이 있다.  뭔가 고난을 상징하는 것도 같고, 힘들고 피곤한 삶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도  같다. 물이 차오르면 잠길 것처럼 저수지에 가까이 있는 무덤 하나가 이런 감정을 더 부채질한다. 그러나 이런 감정은 그저 보는 사람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죽은 몸에서도 삶을 피워내는 나무의 삶은 그냥 담담하다. 모든 생장점을 완전히 소실할 때까지, 봄이 오면 또 잎을 활짝 피우고 꽃을 피운다. 겨울이면 입을 닫고 눈을 감는다. 사실 나무에게서 배워야 할 점은 그런 거다 라고 종종 생각한다. 아니나 다를까 가지에 바싹 붙은 버드나무 특유의 모습인 겨울눈을 터뜨리고 속에 든 것이 세상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이번에 내린 차가운 비와 시린 눈을 견디고 꽃을 피우겠지?)



이곳의 안내판에 따르면 오어지(晤漁池)는 오어사에서 유래한다. 그러니까 오어지를 풀이하자면 '내 고기지' 이렇게 된다.

<포항시 남구 오천읍 운재산 동쪽 기슭에 있는 오어사는 신라 26대 진평왕 대에 창건된 사찰로 당초에는 항사사라 불렸으나 원효대사와 혜공선사가 이곳에서 수도할 때 법력으로 개천의 고기를 생환토록 시합을 하였는데 그중 한 마리는 살지 못하고 다른 한 마리는 살아서 힘차게 헤엄치는지라 그 고기가 서로 자기 고기라고 하여 나 오, 고기 어 자를 써서 '오어사'라 하였다고 합니다.>

오어지 둘레길은 지난해 조성을 마무리했다고 하는데, 이쯤에서 조성은 마무리하고 그냥 두면 좋겠다. 대부분의 둘레길이 그러하듯 더 열심히 깔끔하게 조성할수록 더 망가지기 때문에. 맨발로 걷는 길이 있는데, 봄이 완연하면 신발을 벗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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