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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Dec 31. 2022

무언가를 사랑하는 일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

자스민의 중고영화 | 아바타: 물의 길


2009년, <아바타>가 개봉했을 당시에 나는 열정 넘치는 영화학도였다. 자칭 ‘시네필(Cinephile)’*로서 자부심이 충만했던 시절. 획기적인 그래픽 기술로 전 세계를 휩쓸었던 <아바타>는 모름지기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필람해야 하는 작품이었다. 열대 우림을 모티브로 한 영화 속 판도라 행성의 풍경은 가본 적 없는 그곳을 향한 향수를 불러일으켜 ‘아바타 신드롬’을 만들어낼 정도였다. 극장가에서는 몇 년 안에 속편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아바타: 물의 길>은 무려 13년 만에 개봉을 했으니, 긴긴 기다림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극장에 가야 한다는 초조함이 들었다.
*시네필(Cinephile): 영화 애호가를 의미하는 프랑스어로, "cinéma"와 "phile"을 바탕으로 한 조어이다. 단순한 영화를 좋아하는 팬이 아니라 "장르를 불문하고, 영화 자체를 각별히 사랑한다."라는 등의 의미를 담아 사용된다.    


나는 평소에 정말 기대하는 영화는 감독과 출연진, 러닝타임 정도로 최소한의 정보만을 확인한다. 이외에 <아바타: 물의 길>에 대해서 미리 알고 있었던 건 바닷속 풍경이 펼쳐진다는 것뿐이었다. 2년째 프리다이빙을 취미로 즐기면서 바다가 그리워질 때면 바다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는 나로서는 그것만으로도 스크린을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이유가 충분했다.


<아바타: 물의 길>은 열대 우림에서 해양 세계로 배경을 옮겨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아낸다. 영화에서 표현하는 ‘물의 길’이란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어진 삶의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필연적으로 그려지는 바닷가 마을 특유의 여유로움과 물속 세상의 아름다움이란, 한 명의 관객으로서도 한 명의 프리다이버로서도 가슴 설레는 광경이었다. 한편,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전편이 그랬듯이) 이번 작품에서도 인류가 생태계에 행하는 무자비함에 대해서 꽤나 집요하게 다루고 있다.  




제임스 카메론은 세기말에 기록적인 흥행을 세운 <타이타닉>(1998)을 완성하기 훨씬 이전부터 바닷속을 향한 열망을 품고 있었다. 이는 해양학자 실비아 얼의 환경 캠페인을 다룬 다큐멘터리 <미션 블루>(2015)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션 블루>는 잠수복을 입은 실비아 얼이 고래상어 떼와 유영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고래상어는 현존하는 어류 중에서 가장 큰 생물로 알려져 있는데, 사전에 공개된 <아바타: 물의 길> 장면 중에서도 고래상어와 닮은 실루엣이 드러나 기대를 더하기도 했다.


<아바타: 물의 길> 보도스틸 | 제공: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앞서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제임스 카메론은 영화 감독이자 심해 탐험가로 소개된다. 1950년대에 최초로 스쿠버 장비가 개발된 이후에 놀라운 탐험이 이어졌는데, 그는 초창기부터 심해 탐험에 도전했을 뿐 아니라 불과 10년 전까지도 심해 잠수정(딥씨 챌린저)을 제작하고 단독 잠수에 성공한 바 있다. 이 같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고 나면 <아바타>의 배경이 바다로 옮겨간 것 또한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여겨지지 않을는지.




대부분의 인구가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 바다와 우리 삶의 연관성을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 도시인에게 바다는 휴식을 제공하는 안식처이거나 심란한 마음을 달래러 찾아가는 대자연의 일부이니까. 제임스 카메론은 고작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할애해 바다에서도 인간의 시야로 볼 수 있는 범위는 5% 정도로 매우 한정적이라는 경이로운 사실이나, 바다가 생태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대신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아바타’에 바다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칠흑 같은 심해에서 빛을 발하는 수중 생물들의 영롱함으로 수놓은 스크린 너머에 바다를 향한 깊은 애정이 넘실거린다. 그의 정성스러운 노력 덕분에 관객들은 낯선 행성의 작은 바닷가 마을을 통해 지구의 푸른 바다를 떠올리게 된다. 영화에 대한 평가만으로는 호불호가 갈릴지라도 어쩌면 그의 바람대로 바다를 떠올릴 때 드는 감정에 미세한 변화가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앞으로 나는 바다의 품이 그리워질 때마다 이 영화를 종종 꺼내어 볼 셈이다. 그리고 잊지 않으려 한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일에는 시작도 끝도 없음을.



물의 길에는 시작도 끝도 없어.
바다는 네 주위에도, 네 안에도 있어.




해당 글은 뉴스레터 [디스턴스]에서 발행한 "자스민의 중고영화" 5번째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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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스민의 중고영화

교복을 입고서 비디오 가게를 뻔질나게 드나들던 시절에 영화감독의 꿈을 품고 대학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다. 졸업영화를 찍고 방황의 시기를 보내다가 영화 홍보마케터로 수년간 일하며 영화계의 쓴맛 단맛을 고루 섭취하고, 무럭무럭 자라 글 쓰는 마케터가 되었다. <자스민의 중고영화>에서는 스크린에 비친 장면들을 일상의 프레임으로 옮겨 그 간극(distance)을 헤아려볼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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