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smine Dec 06. 2020

S#.3 하든지 말든지

나가주세요


“7분 후, 가게 마감합니다.”

웨이터의 무미건조한 음성에 사람들의 어깨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방금까지 축축하게 흐르던 공기의 흐름이 바뀌는 듯 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벽면에 걸린 시계를 훔쳐봤다. 8시 53분. 얄짤없구나. 9시가 되기까지 딱 7분이 남아있었다. 테이블 너머에 앉아있는 그의 시선은 유리에 담긴 노란색 액체에 고집스럽게 꽂혀 있었다. 술잔의 밑동을 만지작거리는 그의 손가락 끝에는 망설임이 묻어났다. 째깍째깍, 벽시계의 초침소리가 그녀의 귓속으로 와 박혔다. 그녀는 신중하게 입술을 떼었다.

“그러니까...”

“알았어.”

마침내 그는 술잔에서 시선을 거두고 그녀를 바라봤다.

“네가 불쾌했다면 미안해.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거 충분히 이해해. 이제 그런 표현은 자제할게. 됐지?”

자제? 자제라고? 그녀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잠깐만.”

그녀는 조바심이 들어 마른 입술을 한번 훔쳤다. 그가 당장이라도 외투를 손에 들고 나가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대로 여기서 나간다면 다시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는 아마 ‘자제’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그녀는 확신했다.

“나는...싫어.”

“뭐라고?”

이번에는 그의 눈썹이 크게 일렁였다.

“그러니까, 아닌 거 같아. 자제하는 게 아니라...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게...”

“뭐?”

“...웃겨.”

그녀는 입안에 맴돌던 말을 뱉었다. 말 끝에 실소가 터져나왔다. ‘웃기다’고 말하면서 하나도 유쾌할 것 없는 상황이 황당해서 진짜로 웃음이 나와버린 것이다.

“웃기다고?”

그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그녀는 입술 사이로 작은 숨을 뱉으면서 입꼬리에 묻어있는 웃음을 간신히 거둘수 있었다.

“어. 그렇네. 네가 자제하든 말든 상관없어. 내가 지금까지 만난 너는 그런 사람인 거니까.”

“하아......”

깊은 한숨이 두 사람 사이의 공간에 낮게 가라앉았다.

“나 먼저 나갈게. 그동안 고마웠어. 잘 살아.”

그녀는 더이상 그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또각또각 경쾌한 구두 소리가 울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S#.2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