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여러분의 입장은 어떠한가요? 최근에 한 선배님이 본인 한창때 별명이 '알고집'이었다고 하네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야 그게 '앎에 대한 고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저도 대체로 그러했습니다. 모르는 것은 일단 알고 봐야겠다는 사람이었죠. 좋은 면도 있고, 좀 피곤할 때도 있죠. 그래서 요즘에는 좀 더 게을러지기로 했습니다. 모르는 건 모른 채로 살아가는 것...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아무리 알려고 해도 도통 모르겠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감정'이죠. 그리고 우리가 사람일 수 있는 건, 사람이 그토록 부정확한 건 바로 이 감정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흔하게 논쟁할 때 감정적으로 대하지 말라고 하잖아요?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우리 모두는 기본적으로 감정의 바탕 위에 서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미우나 고우나 감정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책 제목이 길어서 반복하기 싫은데요, 긴 책 제목에 비해 책은 굉장히 간결합니다. 예전 코엑스에 있던 서울문고에서 구입해서 무역센터 뒷 광장에서 바로 다 읽은 기억이 납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떠올린 아이디어가 '15분'이었습니다. 15분 만에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어 보자... 사실 진지하게 준비했었습니다. 책 가격은 3천 원 정도로 싸게 하고, 15분이면 딱 읽을 수 있을 만큼으로 편집하고... 그러다 몇 가지 문제가 있어 지지부진해졌는데, 그새 '세바시'가 등장한 거죠... 그래도 아직 15 minutes 페이스북 페이지는 건재합니다. ㅎ
요즘 가짜 뉴스 때문에 말이 많은데... 히틀러 공부를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괜히 말 보태기는 싫고 그냥 한마디만 덧붙이고 끝내겠습니다. 모두가 히틀러의 최후처럼 되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국내에서 더글러스 케네디의 출세작은 [빅 픽쳐]겠지요... 저도 거기서부터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아끼는 작품은 [모멘트]입니다. 이게 왜 이리 좋은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그 '순간'이라는 거... 저는 행복도 '순간'을 발견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런 생각도 이 작품에 영향을 받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늘 말하지만 저는 사랑은 완전 모릅니다. 그런데 이 순간은 꽤 공감이 됩니다.
그런 순간들 있잖아요. 인생이 바뀌는 것을 알게 되는 그 순간.
이렇게 따로 뽑아 놓으니 생각보다 강렬함이 없는데, 처음에 읽을 때는 이 부분 읽고는 한참을 멈췄습니다. 그만큼 가슴 설레는 순간이었습니다.
미스터리나, 추리, 범죄 류의 장르 소설은 좋아하는데, 사실 SF는 별로 많이 읽지는 않았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조금 의외인데, 영화로 너무 많이 봐서 그런 건 아닐까 싶습니다. 필립 K. 딕 전집이 나왔는데, 작가보다는 사실 책 제본이 마음에 들어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전집과 단편집 3권 모두 갖게 되었죠. 최근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 전집만은 꿋꿋이 챙겨 아직도 갖고 있습니다.
[흘러라 내 눈물, 경관을 말했다]는 전집에서 가장 먼저 읽은 작품입니다. 뭔가 어수선한데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저의 최애 작품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필립 K. 딕의 작품들이 대개 그렇습니다. 사실 글은 어수선하고, 전개는 뭔가 난잡합니다. 구조도 뭐... 설렁설렁하고요... 그럼에도 살아남는 것은 뭔가 설명하기 힘든 특유의 아우라라고 할까... 그런 게 있습니다.
이쯤 되면 감성 SF라고 할까요? 제가 필립 K. 딕을 최고의 SF작가로 꼽는 것은 제대로 아는 작가가 이 분 하나여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혹시 SF 마니아시면 양해해 주세요. ㅎ
감정에도 종류가 있죠. 즐거움, 기쁨, 환희, 불쾌, 답답... 등등 그런데 감정하면 역시 '슬픔' 아닐까요? 앞에서 필립 K. 딕이 그랬다고 그런 거는 아닙니다. (제가 한번 말한 것 같은데, 제가 문장을 뽑는 기준은 제가 평소 말하던 혹은 생각하던 것과 같은 것들을 뽑습니다.) 슬픔은 참 묘합니다. 특히 한 구석에 조그맣게 자리 잡은 쾌감을 품고 잇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미스터리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감정의 최고봉인가요?
이 지점에서 '앎'과의 관계가 나오네요. 그래서일까요?
모르면 모르는 대로 놔두고자 하면 할수록 무덤덤해지는 것 같습니다. 참 난감한 순간이네요. 슬프기 위해서 좀 알아두는 것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글을 쓴다는 것은 좀 다른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저의 글쓰기 선생님이기도 합니다. 한창 글 쓰는 것을 배울 때(물론 독학입니다), 교재로 삼은 것이 이오덕 선생님의 [우리글 바로 쓰기], 또 한 권은 생각이 안 나는데, 파란색 표지의 좀 두꺼운 책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 책을 읽으면서 큰 걸 배우게 됐죠(지금은 다 지난 일입니다만...).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헝가리에서 태어나 스위스로 망명해서 프랑스어로 글을 썼습니다. 제가 볼 때는 이런 태도 즉 '사실에 충실한 묘사'의 자세를 유지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게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읽는 데 집중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