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다가오는 것들
얼마 전 발효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좀 이상하지만 암튼 듣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워낙 철학적인 기반을 탄탄하게 설명해 주시는 바람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죠. 발효란 게 제법 매력적이더군요. 썩혀서 먹는다? 썩히니까 좋더라? 와 같은 약간 상식을 벗어난 개념이어서 좋았습니다.
시간이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왜, 중요한 깨달음은 꼭 한발 늦게 오잖아요? 때로는 그런 것들이 안타깝고 또 답답할 수도 있겠는데, 그게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나 봅니다. 그러니 뒤늦게 알게 되었다고 한탄한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이 몰라준다고 답답해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저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고 생각하기로 하겠습니다.
좋게 생각하면 이런 것들이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원 데이]는 영어책으로 먼저 읽기 시작했습니다. 컨셉이 재미있잖아요. 일 년 중의 어느 하루에 초점을 맞추어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것. 제가 창작에 대한 고민을 할 때 가장 먼저 타진해 보는 방법이거든요. 아주 작은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
한 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집 앞의 벤치를 똑같은 프레임으로 매일매일 촬영을 해두는 것이죠. 누군가 나타나고, 지나가고, 그렇게 계속 시간이 쌓이다 보면 무언가 닮게 되지 않을까? 이게 예전에는 비용이 많이 드는 작업인데 그런 문제가 해결되면서 많은 작품(?)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시간의 문제일 뿐입니다. 얼마 전에도 말했지만, 365일만으로도 충분한데, 그게 정말 만만치 않습니다.
이 책에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런던의 서점에서 영어책을 구입하고는, 영어책을 다 읽기도 전에 번역본을 사고, 또 번역본도 다 읽기 전에 영화를 보고, 영화도 끝까지 다 못 봤습니다. ㅠㅠ
[밤으로의 여행]은 TV에서 많이 소개된 책입니다. TV 같은 매체에 소개된 책들 중에 50% 정도는 읽었던 책이었고, 나머지 중에서 절반 정도는 읽어보려고 노력합니다만 그렇게 읽게 된 책 중에 다 읽은 책은 별로 없습니다. 약간 특이하긴 한데... 대체로 글이 어렵습니다. 이게 좀 권위를 세우려고 하는 건가? 아니면 자랑하려고 하는 건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하는데, 어쨌거나 제 취향은 아닙니다.
[밤으로의 여행]은 제가 불면러이기 때문에 당연히 흥미로울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글이 너무 어렵습니다. 뭐 공부를 많이 하셨다는 건 알겠는데, 좀 더 공부하셔서 듣는 사람이 알기 쉽게, 편하게 이야기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컸습니다.
제가 틈틈이 강조하듯이 책에서 고른 문장들은 적어도 제가 생각하거나 말한 것과 같은(선후 관계는 무시하고...) 것들을 고르는데... 이 문장은 살짝 예외입니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는 경우라고 할까요? 무슨 얘긴지 너무 잘 알 것 같은데... 머릿속에 늘 맴돌던 말인데... 확 뽑아내긴 어렵더라고요. 아마도 시간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공중곡예사]... 뭐 달리 설명할 말이 없네요. 처음 읽었을 때나 다시 읽고 있는 지금이나 한번 잡으면 페이지 넘기기 바쁩니다. 그냥 재밌어요. 제가 책을 두고서 재미있다는 말 외에 다른 말들을 생각 못하는 경우는 이 것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현실도 아니고, 판타지도 아니고, 영웅담도 아닌데... 왜 이렇게 쉴 틈 없이 재미있는 거죠?
처음 읽었던 책은 동생이 사서, 제가 읽고는 제 후배 집으로 넘어가 있는데, '원더보이 윌트'처럼 여행을 계속하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 책은 중고 서점에서 다시 구매했고요.
[128호실의 원고]는 모처럼 따끈따끈한 최신작인데요... 거의 하루 만에 다 읽었습니다. 서간체의 좀 닭살 돋는 느낌이 있지만, 이 작품이 제게 중요한 이유는 이 책의 내용이 제가 몇 년 전에 구상했던 사업의 구체적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혼자서 철석같이 시작할 거라 마음먹었었는데... 늘 이런 식입니다. 제가 어떤 아이디어를 얘기하면 대체로 주변 사람들이 시큰둥합니다. 뭐 돈이 안될 거다... 현실성이 없다... 이런 얘기를 하긴 하지만 진짜로 제가 서운한 이유는 이해를 못한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각하게 제가 설명이나,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거나, 그림을 좀 배워서 그려주어야 하나? 고민할 정도입니다. 물론 제가 부족한 것도 맞는 얘기지만 중요한 것은 밖으로 보이는 모양이 아니라 그 안에서 펼쳐지는 재미는 완전한 상상의 영역이라 실은 저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대개의 아이디어는 늘 몇 년 후에 현실이 되어서 나타납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형태적인 면만 같고, 그 내용은 늘 실망스럽다는 정도? (물론 저만의 기준입니다. ^^;; 그리고 [12호실의 원고]는 반대로 내용적인 면에서 완전 기대 이상입니다!)
'작가의 말'을 좋아합니다. 그게 작가의 의도라던가, 작품의 배경 등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작품을 통해 만나는 작가는 어찌 보면 간접적으로 접하는 것이잖아요. 그러니까 직접 작가를 대면하는 순간으로서 좋은 느낌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슨 말이든... 좋아합니다.
오랜만에 펼쳐 든 [7년의 밤] 뒤를 보니 작가의 말이 있더라고요. 그때도 분명 읽었을 텐데... 한 7년쯤 지나니 이제야 작가의 말이 제대로 보입니다.
'그러나'..... 역시 피해 갈 수는 없었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