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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e Aug 15. 2020

문장 수집가의 책 일기 15

비우는 것과 비워지는 것 사이

돌이켜 보니, 올 5월쯤엔가... 머릿속이 텅 비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간접적인 감염병 영향으로 거의 집안에서 생활한 지 3개월쯤 되니 절로 아무 생각이 없어졌습니다. 억지로 다시 이것저것 옛날 생각들을 뒤져보며 무어라도 해보려고 했었는데, 그 뒤로는 그래도 뭐라도 꼼지락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는데, 다시 기나긴 장마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을 듯했던 머릿속이 다시 멍해져 버렸습니다.


사실 정신적인 부분은 큰 신경 안 씁니다. 강해서가 아니라 일부러도 비우는데 비워지는 것쯤이야 그럭저럭 받아들일 수 있는데, 비우는 것과 비워지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몸의 문제입니다. 능동적으로 비우는 경우는 몸도 기능을 회복하며 좋아지는 데, 비워지는 경우에는 몸도 많이 망가지게 되더라고요. 머릿속으로는 같은 결과이지만, 몸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아주 다른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럴 때도 있는 것이겠지요.... 비워진 곳에는 무언가를 다시 붓기도 어렵네요.

경제학 용어로는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라고 하나요? 이성적으로 혹은 논리적으로 설명하자면 그렇지만, '욕망'은 꽤나 강력한 감정의 영역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니까 이런 현상에 대해서 굳이 논리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냥 늘 부족한 것이겠지요. 아니면 늘 부족한 상태가 필요하거나... 이 부분에서도 비우는 것과 비워지는 것의 차이는 꽤 큽니다. 비워지게 될 때, 생기는 결핍의 크기가 더 커지겠지요.

왜 책을 읽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꽤 괜찮은 대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대답이 꼭 책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닐 겁니다. 영화를 보든, 드라마를 보든, 웹툰을 모든... 때로는 유튜브를 보든...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강렬한 슬픔과 기쁨을 느끼는 것은 중요한 충분조건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웃거나 울기 위해서 무언가에 재료가 필요하다는 건 살짝 아쉽습니다.

저는 보통 책의 엔딩을 많이 기억합니다. 아마도 기억력이 쇠퇴해 가면서 더욱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요... 첫 문장은 보통 읽으면서 잊히게 되니까요... 그런데 [단순한 열정]은 이 한 문장이 모든 것을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이 문장을 접한 당신은 [단순한 열정]을 읽었다고 생각해도 됩니다. 이 문장으로 상상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여러분의 상상과 이 책의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누구든 누릴 수 있는 사치.... 이니까요. 이럴 때도 아무 생각이 없어지곤 하는데, 이건 비우는 걸까요? 비워지는 것일까요? ^^;;

대체로 진부한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라던가,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주인공이 된다든가... 요는 누구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얘기겠지요. 그래서 저도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고요.


그런데 여러 가지 방법을 검토해 보니 책을 쓰는 일이 제일 귀찮고 어렵긴 하더라고요. ㅋ 요즘 식으로 말하면 이렇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모든 인간은 유튜브 채널을 만들기 위해 태어났다는 걸. 구독자가 많건 적건, 조회수가 높건 말건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하지만 유튜브 채널이 없는 사람은 잊힐 겁니다.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주변에서 아이들과의 소통에 대해 고민을 얘기하면 저는 보통 '옆집 아이'처럼 대해라고 얘기합니다. 조금은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아이의 얘기를 들어주라고요. 보통 나의 아이 얘기보다는 남의 아이 이야기를 더 잘 들어줍니다. 이렇게 하면 우선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공통점'입니다. 저는 우연찮게 아이와 같은 게임을 하게 되면서 이해의 물꼬를 트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가끔씩 답답하면 저와 게임 얘기하자고 하거든요. 이런 공통점이 서로의 세계를 뚫고 들어가는 데는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 서로의 세계를 보고 이해할 수 있다면... 부무와 자식 관계도 그 누구보다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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