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ke Jul 28. 2020

문장 수집가의 책 일기 12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위하여

"아무것도 아냐"라는 말은 좀 이상합니다. 보통 중요한 것이 아니야라는 정도의 의미로 사용합니다. 문장 전체가 부정입니다. 따라서 역으로 생각해 보면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라고 하니까, '아무'는 부정적인 의미가 될 수 없겠죠? 그래서 이 말은 '아무것조차도 아냐'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아무'란 말을 좋아합니다.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아! 이미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긴 합니다. ㅎ) 아무 때, 아무 곳에서 아무나와 함께 한다.... 좋지 않나요?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것들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라는 책 제목을 보는 순간 선택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미국의 수집가가 쓴 글들인데, 솔직히 글은 좀 산만합니다. 농담도 아니고 진담도 아니면서, 단문도 아니고, 장문도 아닙니다. 개인의 이야기인 듯 하지만 어설프게 지식 정보들과 섞이기도 하고요... 결론은 아직도 다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책들을 굳이 다 읽을 필요는 없겠죠. 


이 부분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있었더라면 훨씬 더 유머라는 정체성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이 책에서는 그렇게 빛이 안 납니다. 하지만 '아무'성애자에게는 필요한 위안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은 우주 안에 창조될 자격과 자리매김할 자격이 있다잖아요... ㅋ 

저는 실패한 수집가입니다. 수집이라기보다는 버리지 않고 모아둔 것들이지만, 결국 다 버렸으니까요. 영화, 콘서트 등의 티켓이며, 브로셔와 같은 것들.. 최근(이도 벌써 5년 전의 일이네요..)에는 스타벅스 카드까지... 그리고 지금도 은근 컵이나 그릇에 욕심이 쬐끔 있습니다. ㅎㅎ 


윌리엄 데이비스 킹은 어쩌면 성공한 수집가라고 할 수 있겠지요(이름도 '킹'입니다). 충분한 공간에 그 많은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안고 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성공? 그것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겠지요. ㅋ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일까요?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그리고 극소수라면... 환자로 분류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아닌 것들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공중곡예사]는 제가 맨 처음 폴 오스터에게 빠지게 된 계기가 된 작품입니다. 한번 책을 펼치면 멈출 수가 없습니다. 시동을 걸고 부앙~ 달려 나가는 자동차처럼 시원시원하게 읽힙니다. 아니 읽는다는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정신없이 빠져 들게 됩니다. 물론 폴 오스터의 모든 작품들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공중곡예사]는 특별하고, 그래서 제가 몇 번 구입한 책입니다.


아무것도 아니라서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말은 처음에는 그저 그런 말장난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머릿속에 들어 오더라고요. 작품 내에서는 이 부분이 공중 부양의 재능과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말을 자세히 뜯어 보면 '모른다'라는 것에 대해서, 그 책임을 한 개인에게 책임 지우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은 스스로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 그러니까 사회 속에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너는 아무것도 몰라' 

'왜요?' 

'넌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래서요?'

'네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건 당연한 거야'

'...'

'그러니까 모른다는 것에 대해서 신경 쓰지 마'   

윤고은 작가는 늘 밝아서 좋습니다.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들을 다룰 때마저도 가볍고 경쾌한 기분이 들게 됩니다. [밤의 여행자들]도 따지고 보면 '재난'이라는 심각한 이야기입니다. 이런저런 사회 문제도 등장하고요... 하지만 이를 머리 싸매고 고민하듯이 다루지 않습니다. 가볍게 잽을 날리듯이 끊임없이 때려보고 맞아 보고 하면서 그 정체를 찾아가는 듯합니다.


이 전에는 몰랐었는데, 이 부분을 읽으니 딱, 아무것도 아닌 것을 좋아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풀어내었네요. 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열정적으로 수집하는 수집가의 말과도 얼추 맞아떨어집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껏 가져왔던 마음 한 구석의 짐 하고도 일치하고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버려지거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그런 것들인 거죠. 그래서 사회 속의 문제(골칫덩이나,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라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은 존재하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회의 밖에 있는 것들입니다. 어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은 가끔 어떤 것들이 되기도 합니다. 제가 굳이 그 어떤 것들을 찾아낼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누군가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일을 하고 있겠죠.


[변방을 찾아서]는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아니면 곳?)들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관점으로 읽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아무 사람에 대한 콤플렉스는 확실히 없어져야 하거든요...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것의 한 가지 장점을 소개해 드리면, 최근에 누군가가 저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그것을 부정하거나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더라도 수정하려고 들었을 텐데, 아무(!) 감흥이 없네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게 됩니다. 조금 더 포용하고 받아들이고 감싸 안을 수 있도록 해줍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고, 그때그때 벌어지는 일들 역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니까요...

조금씩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법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문장 수집가의 책 일기 1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