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홀릭은 분명 아닌데 내가 일할 곳이 찾아져야지만 제주도에서의 주중 생활을 시작할 생각이었다. 뭔가 그냥 쉬고 놀러만 간다면 금세 지치고 우울해질 것 같았다. 제주 생활에 무료함과 우울증에 빠지게 된 이야기들을 들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하는 일이 그림검사와 대화를 바탕으로 심리상담을 해주는 것이다 보니 종이와 연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테이블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두 달 정도의 기간 동안 매주 제주도를 와서 내가 심리상담을 해줄 카페를 찾아다녔다. 그러다 발견하고 만난 곳이 지금 이 '마음에 온'이라는 카페이다.
출처: <마음에 온> 인스타그램
너무도 동화 같은 카페여서 너무 마음에 들었고, 너무도 소설 같이 사장님께서 허락을 해주셨다.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제주 생활을 더 편안하고 더 즐겁고 더 여유롭게 하기 위해 발견한 나의 제주에서의 일할 공간이 생긴 것이다. 일보다는 쉼으로써 제주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어서 제주에서의 심리상담은 예약이 들어와도 하루 두 팀 이상은 하지 않기로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내가 운영하면서 심리상담을 해주고 있는 연남동 심리카페는 주말 같은 경우, 하루 5팀에서 6팀의 예약 손님을 받는다. 시간으로는 쉬지 않고 8~10시간 정도를 일한다. 알바를 두었다가 1인 카페로 하면서 혼자 주문받고, 음료 만들어드리고, 심리상담을 해주고 있다. 심리상담을 해주다가 다음 예약팀 손님들이 오면 주문을 받고 음료를 만들어드리고, 그릴 것들에 대해 안내해드리고 다시 상담해드리고 있던 분들에게 가서 상담을 다시 이어서 해드리는 것을 릴레이처럼 계속한다.
그렇게 토일을 보내고 나면 완전 방전 상태가 된다. 심리카페를 5년 넘게 해오다 보니 주말에 일하시는 분들이 월요일에 오시는 경우들이 꽤 있어서 월요일까지 오후까지 예약을 받아 상담을 해주고 나면 제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피곤함에 몸을 좌석에 걸쳐놓듯이 놓고 잠든다.
드디어 첫 손님을 만나다.
그렇게 시작한 제주도 생활에서 드디어 첫 예약 손님의 일정이 잡혔다. 예약 시간보다 일찍 가서 자리를 맡고 내 카페에서 하듯 종이와 연필과 종이를 준비하고 기다렸다. 막상 연남동에 있는 내 카페가 아닌 공간에서 한다는 것이 신기하고 소설 같이 느껴졌다. 기다리면서 속으로 이렇게 말을 했다.
진짜 이렇게 하게 되었네.
여기에서 몇 번 예약 손님을 맞이해서 진행하다 보니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예약 시간이 되어서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분들과 눈을 마주치다 보면 나에게 인사를 하는 분이 있고, 바로 그분이 오늘 나에게 상담을 받기 위해 예약해주신 분이다.
음료 주문을 부탁드리고 간단한 인사를 나누다 음료가 나오면 몇 가지 그림을 그려볼 수 있게 안내해드린다. 연남동과 제주에서 진행함에 있어서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다. 내 카페에서는 15분 모래시계를 놓아드리고 시간에 대한 가이드를 잡아드린다면, 제주에서는 그냥 웬만하면 시간에 대한 제한을 두지 않는다. 왠지 제주에서는 그런 시간제한의 느낌을 드리고 싶지 않았다.
제주에서의 첫 손님은 결혼해서 제주에서 살고 계신 분이셨다. 심적으로 우울감과 무력감에 지쳐있어서 한 번 받아보고 싶어서 오셨다고 하셨다. 그려주신 그림들의 내용도, 이야기를 나누면서 들려주신 이야기들도 삶을 숨을 참아가면서 무겁게 짊어지고 걸어오셨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것도 조금 많이.
그런 부분들에 대해 그림의 내용을 설명해드리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순간 두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너무 참고 누르며 살아오셨다가 본인이 그린 그림을 보며 우울해지고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시간을 살아내고 있으셨는지 그동안 외롭고 서러웠던 순간들과 함께 떠올라 우시는 것 아닐까 싶다. 안쓰럽고 마음이 아팠다.
나는 안쓰럽고 마음이 아프게 느껴질 때마다 최대한 담담하게 대하며 말을 건넨다. 더 편히 울며 쏟아내실 수 있게. 그리고 추스를 수 있게. 작고 짧지만 힘겨웠던 시간에 위로와 도움이 되어주는 순간을 만들어 드리고자 한다. 그것이 나의 역할이고, 나를 찾아온 이유라고 생각을 한다.
다행스럽게도 가실 때 감사하다고 마음이 편안해지셨다고 하셨다. 그날은 낮에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왔었는데 가실 때는 비가 오지 않고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카페 밖으로 나가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와 보낸 시간이 뭐라도 도움이 되셨으면 하고 바라보았다.
이렇게 나의 제주도에서 심리상담 일이 시작되었다. 오래전 겨울, 제주를 찾아와 며칠을 방황하며 걸었던 때의 나를 생각하며 앞으로 제주에서 만나게 될 다양한 분들이 지금의 나로 인해 뭐라도 도움을 받게 되기를 또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