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깨졌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by 연남동 심리카페

심리카페에서 상담을 해 드리다 보면 소중한 사람을 잃거나 떠나보내야만 했던 일을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는 분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 분들을 만나면 내가 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했었을 때, 친한 친구가 하늘나라로 갔었던 때의 내가 떠오른다.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떻게 다루어야 하고, 그리고 어떻게 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해 몰랐었던 내가 떠오른다.


마음이 깨졌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가만히 그냥 있으셔도 돼요. 깨진 마음 추스르는 시간이 필요해요. 환경, 깨진 마음을 복구하려고 서둘러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 보류하세요. '마음이 깨진 나'에게 고요한 시간 허락하는 게 자신을 아끼는 태도예요.

-부부 심리상담가 김선희의 트위터 글 중에서.



살다 보면, 여러 일들로 인해 마음이 깨지게 될 때가 있다. 그것이 마음의 작은 일부분이든, 마음 전체든, 마음이 깨졌을 때는 시간이 필요하다. 마음이 깨졌을 때는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깨진 마음이 다시 붙고 아물 수 있게 해주는 시간 주어야 한다.


카페 <머문>


나는, 그래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그래도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고,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감정은 참고 드러내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걱정 끼치지 않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 그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내가 있을 뿐이었다. 나의 마음이 그렇게까지 깨져있었던 그 순간에.




나에게는 특별한 친구가 있었다. 사교적이어서 친구며 선후배며 참 아는 사람들이 많은 친구였다. 반면 나는 그 반대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 친구랑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 한 여름의 12시가 넘은 어느 늦은 밤이 기억난다. 우리는 독서실에서 집으로 가고 있었다. 그러다 별을 보자며 아파트 단지 안 아스팔트 위에 등을 대고 누웠었다. 그러고는 두 눈 위로 펼쳐지는 밤하늘의 별을 보았다. 저에게 이 기억이 잊히지 않는 건, 제 등으로 느껴지던 아스팔트의 따스한 온기와 함께 다른 거 신경 안 쓰면서 같이 밤하늘의 별을 보는 친구가 옆에 있다는 느낌 때문인 것 같다.


성인이 되고 난 이후에는 이런 적도 있었다. 금요일 점심에 전화가 와서 받으니 자기가 제주도에 학회가 있어서 와있는데 퇴근하고 저녁에 제주도로 오란다. 오면 잠도 재워주고 바다가에서 회도 사주겠다고.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그런데 친구의 말도 그렇게 제주도에 가는 것도 재밌게 느껴졌다. 그래서 당일 저녁 비행기를 예약해서 제주도로 슝~하고 날아갔다. 그리고 정말 그날 밤 제주도 바닷가에 있는 횟집에서 회를 먹으며 술 한잔 나누며 제주도 푸른 밤을 보냈었다. 우리는 분명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뭔가 이런 행동을 즐기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제주 바닷가


나에게 이 친구는 분명 특별한 존재였다. 이 친구의 결혼식 사회를 꼭 제가 봐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한 것을 보면, 이 친구에게 저의 존재도 흔하고 평범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친구도 많고 친한 사람들도 많던 친구인데 저를 따로 불러 결혼식 사회를 부탁한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런데 이 친구에게 제가 생각했었던 것보다 더 크고 특별한 존재였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은, 이 친구의 결혼식이 아닌, 이 친구의 장례식에서였다. 내 친구는 몇 년 전에 하늘나라로 갔다. 친구의 병명은 혈액암이었다. 희귀 혈액암 진단을 받고 4개월 만에 하늘나라로 갔다.


장례식장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왔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자신이 암에 걸렸고,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4개월 동안 이 친구가 어떤 시간을 겪고 보냈는지를 보고 듣고 같이 있어주기도 하면서 알고 있는 것들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장례식장에서 이 친구의 가장 친한 친구로 소개받으며 어떻게 된 일인지에 대해 묻는 사람들에게 설명해주었다. 한두 번 정도 본 사람들도 있었고,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결혼식장에서는 사회를 보았었는데, 장례식장에서는 어떻게 된 일이고, 어떤 시간을 보냈고, 어떤 모습이었는지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이렇게 되었고, 이렇게 되어서, 이렇게 되었어요 라고. 입관할 때에도 가장 친한 친구라고 입관식 하는 곳까지 참석하게 해 주셨고, 나는 이 친구 아버님 곁에서 손을 잡아드리고 위로를 해드렸다.


하지만 나는 나의 슬픔에 대해서는 드러내고 표현하지 않고 그냥 묻어버렸다. 나의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야 했을 때에도 그랬었다. 제대로 울어 보지를 못했다.


나는 충분히 울 줄 몰랐다. 울어도 되는 줄 모르는 사람처럼 무너지지 않으려고 했었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을 더 슬프게 하면 안 된다고만 생각했었다. 슬플 때에는 울어도 된다는 것을 보고 자라지 못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눈물에 수용적인 가족 분위기는 아니었으니까.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나에게도 나와 같이 말해주는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냥 나 보고 마음껏 울라고, 울어도 된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울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카페 <머문>


살아가면서 중요한 건, 힘든 일을 견디게 해주는 '마음의 힘'인 것 같다.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내가 갖게 된 생각은, 마음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표현하고 쏟아낼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이 깨졌을 때, 계속 참고 억누르고 묻는 건 자신을 아끼는 태도가 아니다. 그리고 자신을 아끼지 않는 태도에서는 마음의 힘이 자라나기 힘들다. 괜찮은 척만 하고 있을 뿐이다. 마음이 깨졌을 때 충분히 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슬퍼하고 있는 자신을 아껴주는 모습이다.


나는 서울에서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깨지거나 다치면 제주도에 있는 '머문'이라는 카페에 간다. 파랗게 펼쳐 보이는 제주도 바다를 보고 있다 보면 조금씩 마음을 추스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