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텅 비어있을 정도로 메말라져 있었죠.

by 연남동 심리카페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대신 어느 12월의 크리스마스이브날이었고, 착잡하고 답답한 심정이어서 떠났던 제주도였다. 올레길을 따라 며칠을 계속 걸어도 착잡함과 답답함은 내 안의 하나의 장기처럼 그대로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때 깊은 방황 중이었다. 너무도 희망도 탈출구도 변화의 가능성도 없는 상태였다. 나는 그때 짙게 어두운 해뜨기 직전의 어둠 속에 있었고, 새벽 4시의 외로운 시간 속을 견뎌내고 있었다.


그해가 언제인지는 검색하면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때 나는 한라산 올라가려고 했고, 그때 내가 있었던 곳에서 가까운 등반 코스가 돈내코 코스였다. 돈내코 코스 입구에 도착하니 주차장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주차장에 붙어있던 현수막을 보고 알게 되었다. 15년 만에 입산을 막았다가 이번 겨울에 개방되었다는 것을.


15년 동안 갇혀있던 한라산 돈내코 탐방로가 올 연말 일반인에 개방된다. 제주도 세계 자연유산관리본부는 한라산 탐방로 중 자연휴식년제 실시로 출입이 금지되어 온 돈내코 코스...

출처 : 제주의 소리 (2009년 기사)


그때가 2009년이었구나.


나는 그해 겨울, 아무것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라산을 올랐다. 15년 동안 막아놓았던 곳이고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길이여서 그런지 사람들이 없었다. 사람이 적었다는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올라가는 길에 사람이 없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아무도 없는 깊은 산속을 혼자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그 적막함이 얼마나 사람을 무섭게 만드는지.


생각보다 한라산 정상은 멀었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점점 가팔라졌고 날씨는 점점 추워졌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내가 걸어가야 하는 길은 흙길에서 눈길로, 눈길에서 빙판길로 바뀌어갔다. 산 입구에 식당이고 편의점이고 아무것도 없었기에 아이젠도, 물도, 먹을 것도 없이 오르고 있었다. 그런 것이 없다 보니 점점 오르기 힘들어졌다.


저체온증과 저혈당 상태에 빠졌던 것이었다. 한 걸음도 더는 움직여지게 되지 않았다. 정상까지는 멀었고, 날씨는 점점 춥게 느껴졌고, 빙판으로 된 오르막길에 나는 미끄러지고 미끄러지다 결국 주저앉은 채 더 일어나게가 안 되어졌다.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고, 추운데 졸려왔다. 내려가기에는 너무 많이 올라와서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고, 올라가기에는 몸에서 올라갈 힘이 나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서울에 있는 나의 누군가들에게 전화해서 내 상황을 얘기하고 구조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하면 나는 어찌 되었든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핸드폰에 있는 주소록에 있는 사람들을 주욱 훑어보면서 아무에게도 연락하고 싶어지지 않았다.



나는 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겪어야 했던 일들, 내가 겪고 있던 것들, 답이 없어 보이고 착잡하고 암울하게 그려지는 미래. 나를 감싸주고 보호해주는 것들이 적기도 했었지만 몇 안 되는 보호요인들이 내게서 사라져 버린 그때 나는 내가 왜 살아야 하지, 이렇게 고되고 고단하기만 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그냥 이렇게 잠들어버려도 상관없었다. 여러 가지로 고되고 고단했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왜 그래야 하는지, 왜와 상관없이 그냥 뭐라도 살고 싶다, 살아야지 라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텅 비어있을 정도로 메말라져 있었다. 그때 나는 텅 비어있을 정도로 메말라져 있었다.




심리상담을 해주는 나는 힘겨움 속을 살아내가고 있는 사람에게 솔루션과 같은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벗어 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과연 이유를 몰라서, 원인을 몰라서, 방법을 몰라서일까? 무언가 선택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나의 삶과 나의 경험이 나로 하여금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그렇게 대하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살았고, 지금 꿈만 같이 서울과 제주도를 오가며 두 집 생활을 하고 있다. 지금의 나는 연남동에 심리카페를 만들고 사람들을 만난 지 5년이 넘어가고 있다. 지금의 나는 몇 권의 책을 만들었고 그중에는 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우수 출판 콘텐츠로 선정된 소설도 썼었다.


나는 저날 한라산에서 내려와 바로 비행기 티켓을 구매해서 서울로 돌아갔고, 그때 우연히 섬세한 성격에 관해 접하고, 섬세한 성격에 관한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그날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나를 계산과 조건 없이 걱정해주고 염려해주며 본인이 줄 수 있는 도움을 주려고 애쓰셨던, 정상에서 내려오던 아주머니였다. 고개를 떨구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나를 발견하고 나에게 다가와 가방에 있던 귤이랑 보온통에서 따라주시던 따뜻하고 달콤했던 믹스커피, 그리고 걱정해주시는 표정과 말들.



나는 그때 살고 싶어졌다.


살고 싶은 이유? 그런 거 딱히, 특별히 없어도 상관없었다. 탁하고 어둡고 무거웠던 안개와 먹구름이 마법처럼 없어졌고, 정신이 들었다. 그냥 살고 싶어졌다. 단지 귤과 믹스커피 때문이 아니다. 누군가 나를 위해 계산 없이 도와준다는 것이, 분석 지적 비교 평가 그런 것 없이 나에 대해, 나의 상태에 대해서만 마음 써줌을 받았던 것이, 내가 받았던 온기와 기운이 나로 하여금 다시 살고 싶어 지게 만들어 주었다.


나를 착잡하게 만드는 나의 문제는 아직도 그대로이고, 어떤 것은 그때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이 된 것도 있지만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더 나은데 라는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 진짜 그렇게 느끼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이건 마인드와 다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살고 있는 현실에서 나오는 것이지. 나는 제주도에 올 때마다 종종 그때가 생각이 나고 그럴 때마다 미소가 지어진다.



그때 참 그랬었었는데
라고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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