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는 소음이 되고, 불행은 절망이 되는 섬세한 사람
"섬세함을 갖고 태어난 사람에게 있어서... 만지는 것은 구타이고, 소리는 소음이 되고, 불행은 절망이 되고, 기쁨은 황홀이 되고, 친구는 애인이고, 애인은 신이며, 실패는 죽음이 된다."
- 펄 벅
나에게는 너무도 그러했다. 좋은 것에 대해서도, 나쁜 것에 대해서도, 그리고 아무것도 아닐 작은 일에 대해서도,
2022년 9월의 어느 월요일 저녁, 비행기 안
나는 제주로 가는 비행기 좌석에 앉아 잠깐 잠들었다가 깼다. 기내는 착륙하기 위해 조명을 끄고 은은한 보조등만이 켜져 있었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으로 소음을 차단하고 있어서 아늑한 동굴 안에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착륙하기 전의 이 순간이 편안하게 쉴 수 있어서 좋아하는 순간 중의 하나이다. 여러 자극들로부터 보호받고 있는 것 같아서 다리를 힘을 빼고 앞으로 쭈욱 뻗은 채로 있으니 더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니 하늘의 색깔이 까맣게 되어 있었다. 이제 곧 착륙하겠구나라고 생각이 들었을 때 기내에서 제주 상공에 들어왔다는 방송이 나왔다.
아, 이제 서울에서 벗어났구나.
나는 눈을 감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비행기가 두꺼운 비구름을 뚫고 제주 공항으로 내려가는 순간을 음미했다. 눈을 감고 있으니 힘을 축 빼고 있는 내가 바람에 휘날리다가 엄마 품에 안기려는 하얀 솜뭉치 같이 느껴졌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난 왜 여전히 이렇게도 벗어나고 싶어 하는 걸까. 주말 동안 이런저런 다양한 예약 손님들을 상담해주고 나면 사람에게 지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이번주는 더 지쳐서 그런 것일까.
비행기는 멈춰 서고 안전벨트 표시 등은 꺼지자 기내에는 "이제 제주에 도착했습니다"라는 방송이 나왔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서 비행기 탑승 모드를 해지하고 무릎에 화면을 돌려 내려놓았다. 핸드폰이 인터넷과 연결되자 알림 메시지가 울렸다. 핸드폰을 돌려 화면에 떠 있는 메시지를 보고는 인상이 찌푸려지면서 긴장이 되었다.
<리뷰 등록, 연남동 심리카페>
영수증 리뷰가 등록되었습니다. 리뷰 확인 후 답글을 작성해주세요.
나는 우선 핸드폰 스케줄표를 클릭해서 열고는 이번 주에 상담했던 분들을 한 명 한 명 떠올려봤다. 안 좋게 리뷰를 남기실 분이 있는지를 한 명 한 명 확인하면서 안 좋게 리뷰를 남겼을 수 있는 분을 가늠해보았다. 그동안 안 좋은 리뷰가 많았었는지를 묻는다면, 지금까지 6년 동안 184개의 리뷰가 있는데 그중 다섯 개정도가 안 좋은 내용을 담고 있는 리뷰이다. 많은 것은 아니지만 안 좋게 적힌 리뷰를 보면 나는 너무 심하게 영향을 받고 괴로워진다. 그래서 새로운 리뷰가 등록이 되었다는 메시지를 받게 되면 긴장하고 안절부절 못한다.
나는 가능할 법한 안 좋게 남겼을 수 있을 분들에 대해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리뷰 등록 알림 메시지를 클릭했다. 나는 제발 안 좋은 내용만 적혀있지 않기를 간절 바라면서. 마치 카드 게임에서 다음 카드가 뭐인지 가슴 조리며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보물이 짠 하고 있을지, 유령과 괴물이 튀어 나올지 모르는 리뷰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아, 제발. 약간 자포자기와 같은 상태에서 숨을 고르며 담담하게 리뷰를 맞이하려 했지만, 리뷰가 핸드폰 화면에 펼쳐지는 순간, 나는 빠르게 장문의 리뷰를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먼저 나쁜 단어, 나쁜 말, 나쁜 뉘앙스의 표현이 있는지를 훑었다.
난 리뷰의 맨 마지막에 붙어 있는 스마일 이모티콘을 보고는 긴장 경계 모드를 해제할 수 있었다. 다행히 걱정되는 리뷰는 아니었다. 유령과 괴물이 튀어 나오지 않았다. 다행이다.
매년 한 번씩은 서로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기 위해서 심리검사를 해봤지만 이번만큼 자세하고 명쾌했던 적은 없었어요. … 안 좋은 말을 듣게 될까 긴장했는데 기본적으로 말씀에 배려가 녹아 있으셔서 좋았고 지금의 저희에겐 너무 필요했던 상담이었습니다. 이래서 이 친구가 이렇게 행동해왔겠구나 하면서 납득도 가면서 스스로의 답답했던 모습이 왜 그래서였는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 다음에도 또 받고 싶어서 결과지 보관을 요청드렸습니다. ….. 리뷰란이 작아서 슬프네요. ♥
리뷰란이 작아서 슬프다는 말을 보며 너무 감사하고 고마웠다. 따뜻한 선물이 놓여 있어서 미소가 지어졌다. 이 생활과 이 일이 너무 좋게 느껴졌다.
나는 경계모드로 긴장하고 초조해하고 있던 나를 진정시키고 기분 전환을 하고자 며칠 전에 받은 N 엑스퍼트 서비스팀의 메일을 떠올렸다. '[N 엑스퍼트] 연남동 심리카페 전문가님께 공식 홍보 이벤트를 제안 드립니다'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던 메일을.
안녕하세요, 연남동 심리카페 전문가님,
N 엑스퍼트 서비스팀 담당자 L입니다. N 엑스퍼트에서 연남동 심리카페 전문가님께 공식 블로그 홍보 이벤트 제안을 드리고 싶어 이렇게 메일을 드립니다.
엑스퍼트 팀에서는 10월부터 [나 자신을 더 깊게 이해하고 성장하고 싶은 분들을 위한 엑스퍼트의 상품 추천]을 컨셉으로 엑스퍼트 상품을 소개하려고 하는데, 전문가님의 "그림검사를 활용한 프라이빗 상담" 상품이 잘 맞아 소개하면 좋을 것 같아 메일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
N 엑스퍼트 서비스팀 담당자 L 드림
N 엑스퍼트에서도 내 카페에서 해드리고 있는 것을 받아볼 수 있게 해드리다보니 이런 제안도 받게 되고 신기했다. 엑스퍼트로 활동하는 전문가들 수가 몇 백명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중에 내가 뽑혔다는 것에 기분이 좋았다. 특히, 이벤트 관련 연락을 주고 받던 중 "개인적으로 제가 궁금했던 상품이라 내일 상담이 기대가 되네요."라는 말에 기분이 더 좋았다. 누군가에게 내가 해오고 있는 것이 기대가 된다는 말을 듣는 것만큼 가슴 뛰게 해주는 말이 있을까 싶었다.
나는 제주도에 있는 집에 도착해서 노트북을 켜고 N 엑스퍼트 사이트에 들어갔다. L이 실제 내가 해주는 상담을 받고 그 후기를 작성해서 이벤트 홍보 자료로 사용하고 싶다고 해서 시간을 맞추다보니 제주집에 와 있을 월요일 늦은 저녁시간이 가능했다. 우선 나는 L이 나의 안내에 따라 그려준 그림검사 그림 다섯 가지를 다시 한 번 더 확인해보았다. 그리고 내가 보내줬던 몇 가지 질문에 대해 남겨준 내용들도 다시 한 번 더 확인해보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물어볼 내용들과 확인할 부분들을 정리하며 약속한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L에게 궁금해 하는 것들에 대해 알려드리고 몇 가지 상담을 해드리고 나자 잠깐 인터뷰를 해도 괜찮은지 물어보았다. 그렇게 나는 L과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짧은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셨어요? 혹시 계기 같은 것이 있다면 이야기 해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원래 저는 공대를 다녔었어요.
정말요?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을 하게 되셨어요?
좀 분위기가 무거워질 거 같은데... 군대를 갔다오고 일주일 정도 되었을 때 아버님이 돌아가셨어요. 장례를 치르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릴 때 다르게 자랄 수 있었다면 다른 삶을 사실 수 있었을 텐데. 아버지도 나도, 그래서 심리학과가 아닌 아동학으로 편입을 했었어요.
와, 남자분이신데 아동학과 나오셨어요?
네, 흔하진 않죠. 그땐 심리학은 전체 연령에 대한 것 같았고, 아동학과 안에 있는 아동심리나 아동상담으로 가면 좀 더 어린 시절에 초점을 맞춘 공부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대학원 과정을 아동상담으로 가고, 놀이치료센터와 유치원에서 이 심리카페를 하기 전까지 10년 넘게 일을 했었어요.
공대, 군대, 아동학과, 아동상담, 놀이치료센터, 유치원, 그리고 심리카페. 살아온 시간의 단어들이 신선하고 흥미로우시네요.
그러게요. 그렇게 되었네요. 계획했던 것은 하나도 없었는데...
L은 조심스럽게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더 해도 괜찮은지를 물었고, 나는 괜찮다고 대답해주었다.
그림검사랑 MBTI를 접목해서 상담까지 해주는 것도 독특한데, 그것만큼 독특하신 것이 제주와 연남동을 오가며 상담을 해주시는 것 같아요. 전문가님은 그러면 매주 제주도를 가시는 거예요?
지금 저 제주도에서 이야기 나누고 있는 걸요.
정말요?
특별한 일이 있지 않으면 매주 제주도에 와요. 연남동에서처럼 예약제로 예약이 있을 때만 제주도에 있는 카페에서 상담을 해주고 있답니다. 예약이 없을 때는 그냥 자유롭게 제주도 생활을 하며 보내고 있어요. 저에게 화요일과 수요일은 주말과 같은 시간이여서요. 벌써 그렇게 생활한지 1년이 넘어가고 있네요.
와, 진짜 좋으시겠어요. 그런데 제주도에서의 생활은 왜 시작하게 되신 거예요?
나는 잠시 '왜'라는 질문에 대해 가볍게 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하자니 시간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짧게 약식으로 대답을 해드렸다.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었어요. 그러다 보니 이렇게 제주랑 서울을 오가며 생활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네요.
L과의 상담과 인터뷰를 마치고 상담해주고 있던 창을 닫고 일어나 창가로 걸어가 밖을 보았다.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조용한 제주의 주택가. 그곳의 옥탑방 같은 2층집. 난 그 2층집의 창문에서 보이는 단층의 집들과 골목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마음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구나'
나는 연남동에서 심리카페에서 그림검사 내용을 바탕으로 1시간 정도 상담을 해드리다보니 피상적이지 않게 이야기를 드리곤 한다. 그래서 그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방송국 작가의 전화를 받고 촬영하게 된 일들처럼 신기한 일도 있었고, 깊게 상처받고 다치게 되는 일도 있었다.
L이 물어봤던 제주 생활을 하게 된 건, 1년 전 깊게 상처받고 다치게 되었던 X와의 일 때문이었다. X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X의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리고 X의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꽤 오래 전의 일로 올라가야 한다. X의 그녀를 먼저 알았던 것은 X가 아닌 나였었다. 나도 X의 그녀도 X에게는 그 얘기를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연남동 심리카페 사진
리뷰 캡쳐 사진
N 엑스퍼트 제안 메일 캡쳐
N 엑스퍼트 이벤트 캡쳐 사진
N 엑스퍼트 이벤트 캡쳐 사진
아리랑 TV 방송 캡쳐 사진
KBS 방송 캡쳐 사진
SBS 방송 캡쳐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