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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Jan 03. 2016

길, 이방인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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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새해 늦게 일어나 시장으로 가는 길을 걷는다. 조용한 오후 길.


스웨덴에서 맞이하는 새해,  일 년 전 예상하지도 생각지도 못했던. 오늘의 길.


십여 년 넘게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간 지난 삼 년간 한국사회에 존재하지 않던 시스템을 만들려고 발버둥 치고, 학연과 지연, 그리고 돈으로, 명성으로 점철된 이해관계 속에서 결국 또 다른 이방인으로 허우적대며 감정적으로,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탈진하며 그  길을 걸었었다. 그곳은 내게 비록 개인 돈은 아니었지만, 내  의도 및 생각대로 엄청난 금액을 소비할 수 있게 해주었고, 매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월급으로 인해 통장을 살펴볼 필요가 없게 만들어 주었으며, 얄팍한 지식과 학위와, 그리고 지위로 인해  더해지는 권력을 내게 제공해 주었었다.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커피와 잡담으로 하루를 보내어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하루들을 제공해주었던 그 길.  


그곳을 떠나, 이제는 사소한 장비하나 마음대로 살 수 없고, 매달 빡빡한 통장의 잔액을 걱정해야 하며, 평범하다 못해, 존재감이 없어져 버린 나 자신을 사무실, 실험실, 회의실에서 조용히 침묵으로 살펴보는 이 길, 또 다른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길 위에 오늘 서 있다.


여전히 한국이 그립고,

여전히 한국 음식이 그립고,

 그리고 여전히 한국 사람들이 그립다.


하지만 이젠 혼자, 그리고 내 가족과 조용히 이곳에서 침묵으로 이방인의 길을 걷고 싶다.  이 길 끝에, 수고하고 짐 진자들이 짐을 내려 놓고 도착하여, 영원히 이방인이 아님으로 쉴 수 있는  그곳을 향하여....


2016.1.2. L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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