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의 콜롬비아 칼리 살사 여행
처음 무언가를 배우는 일은 항상 긴장되기 마련이다.
학원 앞에 도착하니 자신 있다던 마음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키만과 둘이 서로 먼저 올라가라며 등을 떠밀었다. 티격태격. 뒤에서 누군가 내 등을 두드렸다.
"지나가게 비켜줄래?" (라는 뉘앙스의 스페인어를 구사함.)
머쓱해진 우리는 옆으로 슬쩍 자리를 비켜준 후 천천히 그 친구 뒤를 따라 올라갔다. 계단을 한발 한발 딛고 올라가며 마음을 추슬렀다. 일단 먼저 웃으며 인사를 건네야겠다. 흥이 많은 사람들이니까 반갑게 맞아줄거야.
"올라!" (안녕!)
"올라 무쵸 구스또!" (안녕 만나서 반가워!)
환한 얼굴로 맞아주는 강사를 보니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한쪽 구석에는 가방을 올려 놓는 선반이 자리했고 바깥 창문을 제외한 벽은 거울로 둘러 쌓여있었다.
가방을 구석에 내려놓고 주변을 둘러보니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 거울을 보며 미리 몸을 풀기를 하는 사람들. 강사와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 동양인이 신기한 모양이다.
보통 한국이었다면 상대방을 관찰하다 눈이 마주치면 시선을 피하기 마련인데 이 친구들은 계속 본다. 끝까지 본다. 나도 왠지모를 오기가 생겨 계속 쳐다본다. 눈썹을 위로 으쓱 하며 씩 웃어 보인다. 괜히 어색해진 나는 같이 웃어 보이며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강사가 입으로 휘파람을 불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스트레칭부터 시작이다. 부드럽게 목돌리기 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허리를 돌리고. 발목도 돌려준다. 양 손은 허리 뒤쪽에 포개어 올리고 다리를 어깨 넓이만큼 벌린다. 발 뒷꿈치를 까치발처럼 들어올렸다가 내린다. 1번. 2번... 20번... 30번.. 40번? 잠깐 이거 몸풀기 맞지?
와. 헬스장에서 단체 PT를 받는 느낌이었다. 동작 하나에 한 두 명은 나가떨어져야 다음 동작을 하는 저 강사 놈. 거울로 지켜보며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다.
어디 몸풀기뿐이랴. 기본 스텝 연습하는 것도 얼마나 힘들던지. 노래에 맞춰 빠르게 혹은 천천히. 한 가지 스텝에서 몇 개의 스텝이 파생되는 건지 강사들의 현란한 발을 따라가다 발이 꼬여 넘어지는 사람도 있었다. 수업 시작한 지 30분인데 다리가 벌써 후들거린다.
지옥 같은 30분간 스트레칭이 끝나고 정규수업이 이어졌다. 우리는 레벨1 코스로 지정받았다. 사실 지정받았다기 보다는 누가봐도 오늘 처음 온 우리에게 강사가 너희는 저쪽으로 가라고 알려주었다. 레벨 1 수업답게 강사는 천천히 동작을 짚어가며 수업을 진행했다.
그러면 뭐하랴. 이미 다리가 풀려버련 우리는 무너지는 다리를 부여잡고 정신력으로 버텼다. 여기서 힘들다고 주저앉으면 한국인은 체력이 약하다고 생각할게 분명했다. 그런 편견을 우리가 만들 순 없지. 나와 키만은 눈으로 강사의 발, 손, 어깨를 빠르게 따라다녔다.
남자는 왼발이 앞으로. 여자는 오른발을 뒤로. 손을 마주 잡고 앞뒤로 흔들며 눈치로 강사의 동작을 따라 했다. 멕시코와 쿠바에서 살사를 배워봤다고 우리의 몸은 조금씩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우노 도스 뜨레스, 씽코 씨에쓰 씨에떼" (원 투 쓰리, 파이브 식스 세븐)
남녀 파트너가 강사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에워싼 후 스텝을 배우고 한 스텝이 끝나면 파트너와 같이 춤을 추며 맞춰가는 방식이었다. 보통 여자 수강생들이 많아서 남자 파트너 없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여자 수강생들은 혼자 연습을 하기도 하는데 강사가 파트너를 바꿔가면서 연습을 할 수 있도록 신경써주기 때문에 하루종일 혼자 연습하게 되는 불상사는 생기지 않는다.
수업이 끝나면 머리가 어질 해질 정도로 힘들지만 재밌긴 엄청 재밌다. '아, 이래서 춤바람이 나는구나.' 스페인어를 모르면 어떠랴. 살사를 못 추면 어떠랴. 등에 땀이 흠뻑 젖을 정도로 격하게 몸을 흔드니 스트레스 풀리는 것은 물론이요. 다이어트는 보너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