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의 책장에는 검붉은색으로 된 양장본의 고전 책들이 있었다. 자식들에게 읽히려고 부모님이 사다놓으신 건 아니고 그저 친척들에게서 되물림 되고 있던 책이었다. 제일 막내였던 나는 이 책들의 마지막 종착역이 되었다.
내 책상 옆의 책장 아래 칸에 두 줄을 차지하고 있던 20권이 넘는 이 책들은 당시 내 손으로 측정을 해보았는데 세로는 두 뼘, 가로는 한 뼘 반이었다. 두 손으로 책을 들고 가슴에 품으면 가슴팍이 꽉 찰 정도의 크기였다. 크기도 크기였지만 무게도 상당해서 한 번에 한 책을 선택해 꺼내 읽을 수밖에 없었다.
책 제목은 분노의 포도였는데 포도는 먹는 건데 왜 분노를 할까라는 의구심을 책을 고를 때마다 느꼈던 것 같다. 책을 볼 때는 그 의구심은 어느새 기억저편으로 사라졌지만.
커다란 책에 비해 글씨는 매우 작았다. 나는 책을 읽었다기보다 봤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그냥 글씨와 그림 여백 등을 그림 보듯이 봤다. 첫 장을 넘기면 들판에 커다란 포도나무 한그루가 외롭게 서있는 흑백사진이 나온다. 빳빳하게 코팅된 종이의 질감을 느끼며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손이 베일 때도 있지만 의미도 모르는 글들을 소리 내어 읽었다. 그러다 지루해지면 볼따구를 종이에 가까이 붙였다. 한 쪽 볼이 시원해지면 고개를 돌려 다른 볼을 갖다 대었다. 그 시원함에서 왠지 모를 마음의 평온을 얻었다. 그게 나의 책에 대한 첫 기억이다.
학교에서 공부는 안했지만 (다른 과목에 비해)국어성적은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국어시간에 책에 인용되어 있는 소설을 읽는 시간이 좋아했는데 당시 선생님들은 돌아가며 자리에서 일어나 책을 읽게 시켰다.
보통 오늘 13일이니까 13번, 23번, 33번이 이어서 읽어봐 라는 식이었다. 나는 이 시간에 항상 내 번호가 불려 지길 바랄 정도로 좋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버벅대며 읽는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빠른 속도와 정확한 발음으로 읽을 때 상당한 쾌감을 느꼈다.
대학교는 문과로 가고 싶었지만 집에서 남자는 공대를 가야한다며 전자공학과로 진학했다. 나중 이야기지만 취업할 때는 공대에 가라고 했던 부모님에게 감사했다. 대학교를 다니며 동아리 활동을 해보고 싶어 학보사에 면접을 보기도 했다. 공대에서 왜 여길 왔냐며 학보사 회장이 의아해 했지만 최종 합격 문자를 받았다. 그런데 대학의 꽃은 통기타 아니겠냐며 나를 꼬시던 친구에게 넘어가 결국 통기타 동아리에 가입을 하고 매일 술과 기타와 음악에 빠져 살았다.
술과 기타는 천년가약을 맺은 것처럼 떨어 질 수 없는 사이였다. 아침까지 편의점에서 술을 먹다 지나가는 같은 과 친구가 “여기서 너 뭐해? 오늘 시험 보러 안가?” 라는 말에 급하게 술자리를 정리하고 강의실에 들어갔다. 시험 시작 전에 잠시 엎드려 눈을 붙였는데 등골의 서늘한 냉기를 느껴 벌떡 일어나보니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시계는 오후 1시를 향하고 있었다.
공부는 안했지만 그래도 간간히 학교 도서관에 들러 책을 읽었다. 딱히 좋아하던 작가나 읽고 싶은 책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그저 읽는 행위가 하고 싶었다. 그 시절에 유행하던 아니 유명했던 작가들. 코엘료, 하루키, 공지영, 박민규, 류시화 등을 꺼내 읽었다.
군대에서도, 취업이 늦어질 때도,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어김없이 책을 보았다. 일을 시작하면서 책을 직접 구매해서 책장을 채우는 것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을 때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내가 보고 싶은 책을 누가 먼저 빌리면 다른 도서관을 찾아 헤매던 지난날에 비하면 아직 읽지 못했어도 보고 싶은 책을 책장에 바로 넣을 수 있는 직장인의 스웩에 취했다. 아직 읽지 못한 책이 수두룩해도 내 책장에 그득한 책들을 바라볼 때 그 만족감은 저절로 내 입가에 미소를 만들어 주었다. 어떻게 보면 책과 관련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이상한 나의 삶은 돌이켜보면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나는 책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뭐 그렇다고 말도 안 되게 책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책을 좋아하는 축에 속하는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