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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Jul 19. 2023

뭐라도 쓰면 무엇이라도 될 것 같아

널 위해 숨 쉬고 있을게 #5

망양정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진주는 열여덟이 아니라 여든둘이다. 주름진 눈가에 눈물이 가득이다.


- 할머니, 괜찮으세요?


 할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바람이 불어서라고 했다. 진주는 재문과 함께 있었던 옛 추억을 생각하며 망양정을 내려오는 내내 하염없이 뒤를 돌아봤다.   


- 할머니, 여기 또 오시면 되죠. 제가 또 모시고 올게요.  


- 아니,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아마도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아.   


- 할머니, 제가 앞으로 열 번 아니 백 번은 더 모시고 올 거니까 걱정 마세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철없는 보배도 걱정이 되었다. 울진에 도착해 집에 전화를 했더니 엄마는 할머니가 치매 초기라고 하셨다. 그제야 최근 할머니께서  자주 잊어버리고 행동도 점점 굼뜨거나 가끔은 포악해졌다는 것이 그려졌다. 아마 할머니는 이번 여행이 자신의 생애 마지막 여행이라고 결심하시고 떠나신 듯하다.


할머니는 다음 행선지로 후포항으로 가자고 하셨다. 보배는 매해 3월쯤 대게가 가장 맛있는 이때, 후포항에서 열리는 대게 축제와 관련한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울진 대게와 붉은 대게 축제’로 불리며 국내에서는 꽤 알려진 축제다.


- 할머니, 매해 우리 집에 대게는 누가 보내는 거예요?  


- 나도 그게 궁금해. 어떻게 매해 대게철만 되면 꼬박꼬박 보내는지 나도 죽기 전에 한 번 만나봤으면 좋겠다.  


- 할머니 아시는 분 아니셨요?  


- 보내는 사람은 없는데 받는 사람은 이 할미라더구나. 짐작 가는 사람이 있긴 한데, 그 사람의 생사를 알 수 없어서........


  보배는 어렸을 때부터 울진 대게를 해마다 철이 되면 먹곤 했는데, 당연히 보내주는 사람은 할머니께서 아시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오랜 세월 누가 보냈는지도 모르고 대게를 먹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괜히 미안하고, 궁금해졌다.


서울에서 내려와 망양정을 둘러보면서 식사를 하지 못했던 두 사람은 후포항에 도착해 맛집으로 소문난 대게집으로 들어갔다. 비릿한듯하면서도 달짝지근하고, 고소한 대게 냄새에 보배의 허기진 배는 요동을 쳤다. 잠시 후 큰 접시에 붉은 빛깔을 한 대게가 상 한가운데 턱 하니 자리를 잡는데 보배는 그 모습이 뭉클하면서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식당 사장님은  연신 울진 대게 자랑을 하셨다. 물론 그 많은 말들이 보배의 귀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보배는 대게를 양손에 잡고 인정사정없이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이런 보배에게 할머니는 자꾸만 대게를 건네주었다.   


- 울진에는 바다의 금강산이라는 곳이 있어. 왕돌초라는 수중 암초를 말하는데 이곳에는 대게부터 다양한 물고기들이 살고 있지. 울진 대게는 모두 이곳에서 잡힌단다.  


- 우와. 우리 할머니 대게 박사시네요. 그런데 할머니, 우리에게 대게 보내주시는 분도 여기 어디에 살고 계시지 않을까요? 왠지 지금 우리를 보고 있을 것 같아요.   


- 우리는 상대가 누군지 모르니, 지켜보고 있어도 알 수가 없지.  


  그러면서 식사를 많이 못하시는 할머니 모습을 보니 안쓰럽게 느껴졌다.  


- 할머니, 누굴 찾고 싶은 거예요?  


- 내가? 누굴 찾아?   


- 엄마랑 아버지께 들었어요. 할머니께서 울진에 자주 내려오시는 이유, 누굴 찾기 위해서라고요.   


- 이제 찾아 뭣하겠니! 다 늙고, 병들고....... 이런 모습 보여주기 싫다.  


- 할머니, 그래도 사람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그분 성함이라도 알려주세요. 네?  


- 이름, 이름, 그 이름이........ 그러니까....... 주.... 주재문! 진짜 이 할미가 다 됐나 봐. 평생 기억했던 이름이 생각이 안 나다니....... 아무튼 그 사람....... 이 세상에는 없을 거야. 그렇지 않고서는 이해가 안 되지. 그 오랜 세월을 찾아다녔는데, 안 나타날 리가 없어. 보배야, 피곤하구나. 오늘은 이만 숙소로 돌아가자.  


  할머니는 울진에 오면 백암온천이나 덕구온천에 온천욕을 하셨다고 해 이번 숙소도 백암온천으로 정했다. 백암온천은 신라시대에 한 사냥꾼이 사슴을 뒤쫓다가 약수탕을 알게 됐고, 훗날 백암사의 한 스님이 욕탕을 지어 병자를 목욕시켰더니 나았다고 한다. 1979년에는 국민관광지 제3호로 지정되면서 온천휴양지로 사랑받고 있다.


할머니는 온천욕을 하신 후 잠이 들었고, 그 사이 진주는 울진군 SNS에 ‘주재문’이라는 사람을 찾는 글을 올렸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났을까 보배의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울진군의 SNS 담당자라고 말했다. 할머니의 사연을 말하니 신기하게도 그가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평생을 찾아다녔는데 보배는 SNS로 몇 분 만에 그의 흔적을 찾아낸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곤히 잠든 할머니를 깨워 이 소식을 전하고 싶었지만 기다리기로 했다. 그 사이 보배는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깼다. 그런데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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