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비포유를 보다 문득
영화 [미비포유] 에서 에밀리아 클라크(루이자)가 빨간 드레스를 입고 샘 클라플린(윌) 앞에 나타나는 장면이 있다. 윌이 그녀에게 훅가는 장면인데, 아내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시종일관 엽기적인 에밀리아 클라크의 패션을 큭큭 비웃다가 이 장면에 이르러서 마침내 "예쁘네.." 라고 중얼거렸다.
사실 뭐 '여자가 꾸며놓고 보니 겁나게 미인이었다'라는 식의 설정은 로맨스 장르에서 많이 시도되는 식상한 전개이긴 한데, 영화 초반부에 에밀리아 클라크가 정말 눈뜨고 보기 힘든 패션 개그를 선보이기 때문에 이 숏은 꽤나 윌에 대한 감정 이입을 돕는 기능을 하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 이렇다. 아마 윌은 그날 이후로 루이자가 그 드레스를 입건 안 입건, 또는 그렇게 멋지게 화장을 하든 안 하든 그녀의 일상에서 그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붉은 드레스 입은 자태를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그녀가 일상의 회색빛으로 매몰되어 있고, 그래서 사람들이 그녀를 바라보지 않아도 윌은 그녀를 바라볼 것이다.
평평한 인식의 틈새에 솟아나는 특별함. 나는 이것을 아름다움이요,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다. 어떤 이에게 이 특별함은 빨간 드레스일지도 모르고, 그녀가 요리할 때 입는 앞치마일지도 모른다. 아픈 나를 문병 왔다가 꾸벅꾸벅 병원에서 졸고 있는 모습일 수도 있고, 취한 모습이거나 혹은 코 고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인식하는 미는 얼마나 알아보기 쉽고 그렇기에 쉬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가. 예를 들어 성형을 통해 정형적 미에 다가가는 것은, 모두가 찾아내고 알아볼 수 있는 아름다움으로 복제되는 것과 같다. 보기 좋은 것과 소중한 것은 다르다.
나의 비루함 속에서 그녀가 운 좋게 매력을 찾았듯, 나도 그러했다. 첫 만남 때 루즈한 코트 소매 밖으로 꼼지락대던 귀여운 손가락. 웃을 때 반달이 되는 눈과 토끼같이 드러나는 치아. 그리고 아무리 찐따라도 세 번은 만나본다는 그녀의 인생철학까지도.
요즘 들어 아내는 '나도 성형하고 싶다. 저런 여자들처럼 예뻐지고 싶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미디어와 SNS의 영향일 것이다. 나는 아내가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에밀리아 클라크에게 "예쁘네.." 라고 중얼거린 순간,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다.
당신에게서 나도 그런 것을 발견한 적이 있다고. 그것이 당신과 결혼한 이유이며, 그러므로 달라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