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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맘 Nov 12. 2017

영국에서 엄마로 살아보기 #17

어느 영국 엄마

어느 영국 엄마 


한 번은 어떤 영국 엄마가 아침에 현우가 교실 들어가기 싫다고 학교 앞에서 울고불고 난리치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 다 들어간 후에 나한테 와서 괜찮냐고 묻기도 했다. 영국에 온지 얼마 안 되어 아직 영어를 몰라서 더 학교 가기 싫어한다고 했더니,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눈물을 닦는다. 어린 아이가 얼마나 힘들겠냐고. 지난 며칠 동안 아침에 학교를 데려다 주는 것이 전쟁 한 바탕 치른 것 같이 고단한 일로만 느껴졌는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녀의 반응에 내가 더 놀랐다. 나는 무심코 이야기했는데 그런 반응이 나오자 약간 민망하기도 했다. 

그녀도 그런 자신의 모습이 당황스러웠는지, 얼른 눈물을 닦으며 말한다. 내게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맨체스터 억양이 강하게 섞여 있다.      


“사실 저도 아주 어렸을 때 다른 나라에 살다가 다섯 살 때 영국으로 왔어요. 갑자기 그 때 생각이 나서 나도 모르게 감정이 조절이 안 되었네요. 당신 아들도 지금은 저렇게 울고 힘들겠지만 아이들은 언어 습득력이 뛰어나므로 금방 적응할거에요. 저도 지금은 외국에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아무도 생각 못 할 만큼 이렇게 완벽한 영어를 하잖아요.”     


그러면서 한바탕 웃는다. 타니아라는 이름의 그녀가 먼저 그녀의 아들이랑 현우를 친구 시켜주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학교 끝나자마자 바로 소개를 시켜주었는데, 아이들은 각자 놀이터에서 노느라 큰 관심이 없었다. 그렇지만 타니아의 아들 키욘이 현우를 가리키며 엄마에게 했던 말은 내 가슴을 후려쳤다.     


“엄마, 저 아이는 말 못 해!”     


이제 겨우 만 4살인 그 아이의 말은, 물론 악의가 있는 말은 전혀 아니었다.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현우가 말(영어)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 자체를 그대로 엄마에게 전달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현우의 엄마인 나에게는 그 말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고 현우가 이런 환경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도록 만들어 준 것이 미안할 뿐이었다.      

그러나 엄마들의 바람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서로 잘 맞았기 때문인지, 얼마 안 가서 현우와 타니아의 아들 키욘은 매우 친한 친구가 되었고, 나중에는 서로 집에도 들락날락하고 같이 키즈 카페 등도 가며, 그만 놀라고 엄마들이 말릴 때 까지 함께 노는 사이가 되었다.      



나중에 좀 더 친해지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타니아는 영국인 어머니와 이라크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서 출생 이후 만 다섯 살까지 이라크에서 살다가 영국으로 왔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영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영국으로 이주하기 전까지는 영어를 거의 몰라서 영국에 도착 후 처음 학교 입학했을 때에는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니 낯선 땅에 떨어져 언어도 안 통하는 곳에서 학교 가기 싫다고 울고불고하는 현우를 보니 남의 일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아랍어도 할 줄 아냐는 질문에, 그녀는 아랍어를 계속 공부하지 않아서 다 잊어버린 것이 아쉽다고 한다. 아랍어를 모국어로 배웠었는데 그녀가 어려서 영국에서 학교를 다닐 당시에는 학교 선생님이 집에서도 아랍어를 쓰지 말고 영어를 쓰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중언어를 사용하게되면 헷갈려서 영어를 배우는데 지장을 준다며. 그녀도 만약에 요즘 시대의 상황이라면 집에서는 아랍어를 써서 이중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한다. 나중에 커서 배우니 아랍어가 너무 어려웠다고.      


그녀가 학교를 다니던 삼십년 전과 지금은 많은 것이 변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도 지난 삼십년 동안 더 많이 개방되고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영국도 만만치않게 변했다. 그리고 외국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10% 가까이를 차지하는 요즘은 영국 정부 차원에서 집에서는 각자의 모국어를 사용하도록 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외국어 구사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현우 덕분에 나도 또 새롭게 겪게 되는 “영국”이라는 세상의 또 다른 모습. 

엄마가 되기 이전에 외국에서 살았던 경험과는 또 다른 경험이 나에게도 시작된다.           


by dreaming m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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