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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아 Sep 12. 2019

서른되면 괜찮아져요

안괜찮음



요즘 ‘멜로가체질’이라는 드라마를 정주행 중이다.

대사 하나하나가 뼈마디를 펀치펀치 날려서 온 몸에 뼈를 남김없이 부러뜨리는 드라마다.


사실 나도 서른이되면 내가 정말 으른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사회적인 위치가 어느 정도 잡혀있고 사랑에 결실을 맺어 마지막 사람이 될 사람과 뜨겁진 않아도 따듯한 연애를 하고 있으며 내 앞길 정도는 내다볼 줄 아는 사람 같은 거?

딱 서른인 나는 여전히 게으르고 칠칠맞고 누군가의 보탬 없이는 위태위태한 바다 위에 떠있는 종이배에 불과하다.

언제 모두 젖어서 침몰해버릴지 모르는, 내 앞길은커녕 코앞도 예측하지 못하고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는 그런 서른.

스무 살 때의 나에게 세상은 모든 게 첫 경험이었다.

공기마저 새롭게 느껴지던 그때가 어제 같다는 말은 진부하겠지만 정말 어제의 일같이 살아있다.

그때의 패기는 온데간데없다.

그때의 풋내 나던 나란 사람은 이제 여기에 없다.

십 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겪어왔던 경험들, 내 곁을 짧게 혹은 길게 스친 사람들, 잊지 못할 삶의 큰 잃음까지.

그것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기도, 숨기기도, 싸우기도 하다 보니 나에게는 굳은살 같은 게 생겨났다.

예를 들면 어떻게 해야 내가 더 행복할지보다는 어떻게 행동해야 내가 덜 불행할지를 먼저 생각하는 게 버릇같은.


굳은살이 될 부분은 가장 많이 쓰이는 곳, 가장 많은 소모를 하는 곳인데 그 부분이 굳을 때까진 아프지만 견뎌내고나면 다음엔 덜 아픈 곳이 되어있다.

신기하게도 굳은살이 박혔던 자리는 조금의 휴식기를 지나면 다시 몰캉한 살로 돌아온다는 것.

굳은살이 되었음에도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그 부분을 쓰게 된다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굳은살 안에 박힌 진짜 내 모습을 잊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불행이 닥치기도 전에 굳은살에 의지하는 치사한 방식보다는 적당히 쓰고 적당히 쉬어가며 나를 말랑하게 만드는 일이 어쩌면 더 나은 서른이 될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은데 그 힘든 걸 내가 해낼 수 있을지는 더 모르겠다.


멜로가체질 띵언첨부

사랑하지 않겠다는 말은 사랑을 잘하고 싶다는 말과도 같지.

3억이면? 그거 달라고 하지도 않아. 그냥 그런 마음만 있으면 돼 상대가 그 마음 몰라주는 것 같으면 알아줄 때까지 표현해.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왜 이렇게 몰라주지 답답해하지도 마. 초조해하지도 마. 어디 안도망가. 네 맘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하는 경우가 더 많을 거야. 왜 그런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을 거야. 이해하려 하지 마. 네가 이해할 수 있는 동물이 아니야 여자는. 네가 해야 할 것을 해. 최선을 다해.

미운 상태에서 헤어졌으니 당연히 미운 거고 다시 만날 생각 없으니 그게 헤어진 거고.

노력해서 얻은 게 그 정도뿐이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듯이 가만히 앉아있는데 예상치 못한 명품가방이 떨어질지 모를 일이죠. 어차피 이상한 세상인데 한 번쯤 낮은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보는 것. 이것이 저의 오늘에겐 마땅한 명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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