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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진건 Aug 24. 2020

1. 네가 태어날 날에

이제 곧 만나게 될 손주에게 보내는 편지

나는 네가 언제 태어날지 모른단다.

하지만 머지않아 만나게 되리라 믿고 있다.


마침내 네가 세상에 나올 때 나는 맨 처음 네 이름을 지어 줄 것이다.

무엇이라고 할까.


우리 집은 주로 문인들의 이름을 빌렸지. 나는 소설가 현진건을, 너의 고모가 될 두 사람은 시인 김수영과 윤동주를 빌렸단다. 그러니 네 이름도 그렇게 할까?

아직 시간이 충분하니 더 생각해 보기로 하자.


“이름이 곧 운명(Nomen est omen)”이라는 격언이 있지. 편의상 아무렇게나 부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위대한 대통령이었던 넬슨 만델라(Nelson Rolihlahla Mandela)는 ‘로하바’라 불렸다더구나.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름 그대로 그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며 인권 문제를 늘 일으키던 변호사였지.


만델라의 부인인 '놈다모'는 "싸우는 여인"이라는 뜻으로 남편과 함께 백인들의 차별정책에 맞서 싸웠다더구나.


“이름값을 한다”는 말처럼 그들은 자신들의 이름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고려 때 애주가 이규보선생은 아들 이름을 "삼백(三白)"이라고 지었다. 그런데 자기를 닮아서 술을 잘 마시자 "삼백이라 이름 지은 것 이제야 뉘우치나니, 매일 삼백 잔 씩 마실까 걱정이구나"하는 시를 쓰기도 했다.


아마도 웃자고 써본 시일 다. 술꾼이 되길 바라면서 아들 이름을 짓는 아버지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나의 보물 같을 손주 이름을 지으려는 내 마음은 어떨 것 같으냐.


어쩌면 네가 태어날 때면 내 몸이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


김정희선생이 <세한도>를 그려주었던 제자 이상적은 어릴 때 아버지가 "약아(藥兒)"라고 불렀다더구나.

약아는 "내 병을 고치는 약 같은 아이(是謂吾之藥)"라는 뜻으로 "약아, 약아"라고 부르다 보니 덕분에 건강을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나도 네 이름을 자꾸 부르며 건강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겠구나.

더 나아가 주변 사람들에게도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교 전통의 중국이나 한국은 이름을 중요시 한다. 그런데 남들을 위한 이름을 짓는 경우는 별로 없단다.

어른들은 아이들 본인의 건강과 행복만을 생각하며 이름을 지어줄 뿐이다.


내 오랜 친구 가운데 홍익이라는 이름이 있다. 홍익(弘益)은 “널리 이롭다” 혹은 “크게 돕는다”는 뜻을 갖고 있다.

왠지 이런 이름이 좋더라. 나도 너에게 이런 이름을 지어 주고 싶구나.


늙어보니 나를 위해서만, 나의 가족만을 위해서만 인생을 산다는 것은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구나.


인생이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으려면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돈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 보다 필요한 것이 마음이다.

이름은 마음의 나침판이다.


네 할머니가 되실 분의 성당 이름은 스텔라다. 스텔라는 성모 마리아를 말하며 라틴어로 별을 뜻한다.

그 이름대로 네 할머니가 되실 분은 아프리카 빈민국 부룬디공화국에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지어주신 소중한 별이 되셨다.    

네 이름도 네 마음의 나침판이 될 것이라 나는 믿는다.


그러기에 네 이름을 정성껏 지어 네가 태어날 그 날에 가장 먼저 선물을 해주고자 싶구나.


온 가족이 너의 이름을 불러줄 때가 어서 오기를 오늘도 손꼽아 기다려본다.  

사랑하는 내 손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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