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에 그득 몸을 담그고 있던 날들에는, 삶의 구렁텅이에 빠져본 적이 있는 사람을 애인으로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안락하고 포근한 둥지 속에서 온 세상의 반짝이는 박수갈채를 받으며 자라온 이들은 결코 알지 못하는 어떤 어두움, 그을음, 서늘함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을 온몸으로 겪어낸 사람들만이 풍기는 고유의 분위기가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만이 나와 나의 세계를 진실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아무런 이유 없이 늘상 해사한 웃음을 짓는 너를, 나는 조금은 미워했던 것 같다. 도대체 뭐가 저렇게 매일같이 즐거운 걸까. 부러움과 질투가 만들어낸 마음이었을 테지만 거기에는 약간의 오만함도 섞여 있었을 것이다. 나는 너랑은 달라. 네가 상상도 하지 못하는 깊은 바닷속을 나는 알고 있어. 너는 영영 알지 못할 새카만 바다의 심연을.
어쩌면, 파도에 휩쓸려 제대로 숨 한 번을 뱉어내지 못하고 있는 스스로를 이 따위의 거만한 생각들로 자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어둠을 겪어내는 일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것은, 생(生)의 어둠을 앎에도 불구하고 환한 빛 한 줄기를 바라고 바라보는 일이라는 것을. 온 세상이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위태로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무겁고도 귀한 한 발자국을 내딛으며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또한.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염원한다. 우리의 무거운 걸음걸음마다 서로의 존재가 응원이 되고, 용기가 되고, 희망이 되기를. 그리하여 어느 날에는 당신과 내가 환하게 내리쬐는 햇살 속에서 서로를 발견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