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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말고, 미세스트레스!

대관절 미세스트레스가 뭐야?

버스가 5분 늦게 도착했을 때

하필이면 오늘이 휴지통 비우는 날일 때

사용하던 볼펜이 다 닳았을 때

길을 걷는데 바람이 문득 세게 불어 머리가 헝클어질 때

오늘따라 직장동료가 나를 살살 긁을 때

기껏 방을 쓸었는데, 아직 머리카락이 몇 가닥 있을 때



어찌 보면 별거 아닌 순간들이다. 그냥 무시하고 지나갈 수도 있는 일이다. 시간이 지난 뒤에는 '그때 그런 일이 있었던가?' 하고 그만 잊어버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즉, 누군가는 이런 일상 속 사소한 '엇나감'에 별다른 의미meaning를 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일 하나하나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세스트레스microstress


미세스트레스라고? 나는 세상에 미세먼지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미세스트레스의 위험성을 진지하게 경고하는 책이 있었다.



저자들은 일상의 사소한 짜증들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마음속에 침범하여 누적되다가, 언젠가 강력한 분노나 무기력, 우울 등으로 터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스트레스'라 불리는 사건들은 의식적으로 대처가 가능하지만 미세스트레스는 미세먼지만큼, 우리가 쉽게 의식하고 대처할 수 있는 게 아니기에 더욱 위험하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구글에 검색해 보니 전문적인 자료보다는 기사, 일회성 칼럼이 주로 눈에 보인다.



이거, 정말 진짜로 있는 개념인가?



미세스트레스라는 개념이 학계에서도 진지하게 다뤄지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구글 학술검색을 통해 실제 어떤 연구들이 있었는지 찾아봤다. 검색어는 microstress, 저널은 심리학 계열 한정이다.





의외로 아예 없는 말은 아니었다. 많은 것은 아니지만 몇몇 논문에서는 미세스트레스microstress 라는 표현을 쓰고 있었다. 몇몇 무료로 풀린 논문들을 직접 읽어봤는데 그 의미 역시 예상했던 바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일상에서 우리가 쉽게 마주칠 수 있는, 그만큼 쉽게 흘려보낼 수 있는 사소한 트러블을 가리켜 미세스트레스라 칭하고 있었다.


다만 논문들을 좀 보다 보니, 미세스트레스라는 말이 그리 학술적으로 엄격하게 정의된 것은 아닌 듯했다. 기존의 스트레스 개념과 어디가 다르고, 비슷한지, 그래서 경계는 어디인지 등에 관한 진지한 논의를 찾을 수 없었다. 미세스트레스만의 명확한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보건대, 일상에서 흔히 겪는 여러 가지, 뭐 스트레스들? 인생에 명확히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아무튼 내키지 않는 그런 종류의 사소한 트러블을 지칭하는 표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미세스트레스, 이거 어떻게 하란 말이야?



1) 모르는 게 약 아니었을까


미세스트레스가 알게 모르게 내 마음을 좀먹을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미세스트레스에 관한 담론을 접하면서 나는 미세스트레스를 의식적으로 자각하는 것이 과연 좋기만 할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평소에는 '아무 일도 아니야' 라고 그냥 지나치고 잊어버릴 수 있는, 탄력적이고 낙관적인 사람이 문득 '혹시 이거 미세스트레스 아냐? 어떻게 하지?', '생각해 보니 이건 스트레스가 맞아. 그냥 넘길 일이 아니야' 라고 생각하며 정말 별 거 아닌 일에 에너지를 과도하게 낭비하면 어떻게 하나.


세상에는 모르는 게 차라리 속 편할 때도 많다. 사소한 트러블 하나하나에 일일이 대응하기에는 우리의 하루는 너무 짧고, 그보다 더 챙겨야 할 주변의 긍정적인 신호들도 많이 있다. 결과적으로 '미세스트레스 줄이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와 '미세스트레스에 쳐맞아 소모되는 에너지'가 엇비슷하다면…? 굳이 미세스트레스를 의식하며 피곤하게 살 필요가 있을까? 



2) 그럼에도 미세스트레스가 주는 교훈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내 인생에서 미세스트레스를 그다지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미세스트레스 담론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한 마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바로 '환경조성'의 중요성이다.


대중은 마음의 문제에 관해 흔히 착각을 범하곤 한다. '심리적 문제 = 개인 인식의 문제'라는 착각이다. 불안, 우울, 분노와 같은 것들이 노오력, 정신수양, 명상 등을 통해 스스로 의식적으로 다스려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즉, 부정적 심리 경험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 귀인attribute하는 데 익숙하다는 말이다.


스트레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흔히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내 마음'에 주목한다. 스트레스 사건에 대하여 정면돌파를 택할지, 타인의 도움을 구할지, 눈 딱 감고 지나가기만을 바랄지, '이런 것쯤 별 일도 아니다'라며 스스로를 열심히 위안하며 이겨낼지, 여러 가지 방법들 중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가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내 마음이 아닌, 외부에서 해답을 찾는 것도 훌륭한 심리학적 해결책 중 하나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이 맨날 부르짖는 말이 있다. 인간의 행동은 개인 내적 속성(성격, 태도 등) 뿐만 아니라 외부의 상황 변화에 따라 이끌린다고 말이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 밀그램의 전기충격 의자 실험 같은 거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이다. 인간은 상황에 종속된 존재이다. 상황이 바뀌면, 행동도 바뀌고, 끝내 마음가짐도 바뀐다.


스트레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스트레스에 잘 대처하는 건강한 삶을 위해 우리는 일차적으로 스트레스 대처법을 연마할 수 있다. 명상도 시도해 보고, 정신수양도 해보고, 심리상담도 받아보며 어떻게 마음의 문제에 대처해 나갈지를 배울 수 있다. 그러나 '미세스트레스'의 존재를 인정하는 한, 의식적인 대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 역시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말 그대로 '미세먼지'와 같은 스트레스여서,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마음속에 침범해 버리니 말이다.


그래서 결국 미세스트레스에 대한 해답은 외부에서 찾아야 한다. 어떻게? '환경조성'을 통해서 말이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아예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환경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스트레스 '대처'에 초점을 맞췄다면, 미세스트레스에 대해서만큼은 '대처'가 아닌,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좋은 사람들만 골라 사귀기

약속시간에는 아주 일찍 다니기

혹시 모르니까 준비물은 두 배로 챙기기

안정적이고 주로 혼자 일하는 회사로 이직하기

천천히, 신중하게 행동하기


뭐 이런 것들이 '환경조성'의 사례에 해당할 수 있겠다. 미세스트레스만 의식하다 너무 안전지향적으로 살아간다면 피곤할 것 같지만… 어쨌든 정답은 '대처'와 '예방', 그 사이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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