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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고객의 기다리는 지루함을 덜 수 있을까?

병원에서 신기한 심리 장치를 만나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평소 몸에 열이 많았던 저는 여전히 샌들을 신고, 반팔에 반바지를 고수하며 버텼습니다만 결국 가벼운 바람막이 한 장으로는 해결이 어려웠나 봅니다. 결국 지독한 감기에 걸리고 말았지요. 밤새 목이 붓고 열이 나는 괴로움에 시달리며 잠을 설쳤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바로 집 근처 병원에 '오픈런'을 해 버렸죠.


아침 여덟시 반인데 대기 인원이 12명이네...


평일인데다 이른 시각이어서 한산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대기 인원이 무려 12명이나 되더군요. 알고보니 12월이 되어 건강검진 수요가 몰려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기껏 병원에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얌전히 번호표를 뽑고 자리에 앉아서 아침 정보 TV 프로그램에 눈길을 주며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약 30분을 기다렸을까요? 드디어 간호사 선생님의 호명이 들렸습니다.


허용회 님~ 이쪽으로 오세요!


앗싸, 드디어 내 차례다, 하는 마음으로 간호사 선생님께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왠걸, 간호사 선생님은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진료 중인 환자 분 나오시면 바로 차례니까, 진료실 바로 앞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세요." 네, 아직 제 차례는 아니었던 겁니다. 곧 들어갈 예정이니 가까운 곳에서 대기하라는 안내였습니다.



진료실 앞으로 자리를 옮겨서 대기 중...


이미 30분이나 대기하며 TV도 보고, 폰도 뒤적거리며 시간 열심히 때운 참이었습니다. 그래서 진료실 앞에 앉아서는 뭐 딱히 폰을 보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시간을 보냈습니다. '생각보다 앞의 분이 오래 들어가 계시네...', '그래도 이제 금방 들어갈 수 있겠지?' 결론적으로 진료실 앞에 앉아서도 15분을 더 기다려야 했지만 신기하게도 저는 그렇게까지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전체적으로 따지면 30분 + 15분 해서 총 45분이었지만 그것보다 덜 걸린 기분이랄까요?




솔직히 병원 측에서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그저 빨리빨리 환자를 받기 위한 편의적 수단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진료실 앞 의자' 정책이 생각보다 무척 훌륭한 심리 장치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을 덜어줄 수 있는, 별 것 아니지만 의외로 강력한 장치라고 생각했죠.


1. 시간 지각은 주관적이다.

45분을 통짜로 기다리는 건 지루합니다. 하지만 비록 동일한 45분이더라도 중간에 한 타임 끊어서, 자리를 옮겨 새롭게 기다리도록 프레임을 다시 짜는 전략은 기다림이 덜 지루하도록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환자를 진료실 앞 의자로 굳이 이동시키는 것은, 환자로 하여금 '기다림이라는 이벤트'에서 어떠한 '진전'이 발생했음을 느끼게끔 만들어 줍니다. 이제 곧 들어갈 수 있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 곧 코앞이다 등과 같은 기대감을 형성하며, 대기 시간에 대한 지루함이나 불만을 줄여줄 수 있죠.


2. 내 몸이 목표지점에 더 가까워졌다.

저는 처음에 병원 입구 근처에 놓인 소파에 앉아 대기했습니다. 진료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위치였죠. 하지만 30분 뒤에는 '진료실 앞 의자'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진료실'이라는 '목표'에 물리적으로 훨씬 더 가까이 이동한 셈입니다. 이후에 15분을 더 기다려야 했지만 어쨌든 진료실이 바로 눈 앞에 보인다는 점은 제게 큰 위안이었습니다. 목표를 향한 '시간적 거리감'을, '물리적 거리감'을 통해 보완한 느낌이랄까요?


3. 내 뒤에 이만큼이나 많다니!

진료실 '앞' 의자로 자리를 옮겼을 때, 저는 무심코 뒤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제가 접수했을 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제 '뒤'의 소파에 앉아 무한정 대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이러한 시각적 자극은 저의 30분의 기다림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등산을 하다가 중간지점에 잠깐 걸터 앉아, 내가 지금까지 올라온 여정을 내려다보는 느낌이랄까요? "와, 내가 이렇게 많이 올라왔단 말야?"






어떻게 고객의 기다리는 시간과 불만을 줄이지?


근본적인 방법은 결국 의사 수를 확충하든, 평균 진료 시간을 줄이든, 어쨌든 실질적인 대기 시간을 줄이는 것에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별도의 비용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업무 프로세스의 점검 및 제도적 변화가 필요할 수도 있겠고요. 그런데 이와 같은 흥미로운 심리 장치를 도입한다면, 별다른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고객 경험customer experience 개선과 관련된 의외의 효과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상, 병원에 앉아 대기하다 떠오른 생각들을 한번 풀어 봤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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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적 글쓰기, 직장심리, 자존감, 목표관리, 마음건강, 메타인지, 외로움 극복, 공간활용의 심리학 등 다양한 주제로 강연 가능합니다(출강 제안 환영). 허작가의 사이콜로피아 홈페이지(바로가기)에서 제 소개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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