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를 공부하는 대학생이 바라본 스웨덴이 사는 모양 (1)
서울이 한창 더워지기 시작할 찰나 스웨덴에 왔다.
이곳에서 지내기 시작한지 열흘이 지났는데 아직도 여름바람이 선선하다. 밤 열시에도 햇빛이 은은하고 해가 부서지듯 쬐이는 동시에 비가내리고 그 사이로 쌍무지개도 언뜻 보이는 그런 날씨다. 이렇게 쌀쌀한 여름방학은 처음이라, 뜨끈한 서울에 더 머무르다 올 걸 살짝 후회도 한 것 같다. 하지만 잠시 드는 볕에도 햇빛을 흡수하
듯 만끽하는 사람들을 보니, 딱 알맞은 시기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스웨덴 사람들은 여름을 사랑한다. 사랑하다 못해 찬양한다. 일 년 중 햇빛이 쨍하고 따뜻한 날씨가 60일 안팎인 나라 스웨덴. 그래서 사람들은 여름을 기다리고, 여름을 한껏 즐기며, 여름의 시간들을 소중히 여기며 사랑한다.
내가 첫 열흘간 머물렀던 동네는 Karlskoga 라는 호수를 낀 작은 도시이다. 도착하기 이틀 전 머무른 집에서는 midsommar를 기념하는 큰 파티가 있었다고 한다. Midsommar는 스웨덴의 명절 중 가장 큰 명절이다. 사람들은 어른 아이 가족 친구 이웃 할 거 없이 한데 모여 각자 가져온 디저트와 쿠키로 테이블을 가득 채우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함께 들판으로 나가 들꽃을 꺾어와 예쁜 나무를 장식하고, ‘여름노래’를 부르고 ‘여름 춤’을 춘다. 여름이 다시 찾아옴을 함께 기뻐하며, 여름에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을 먹고, 여름 과일이 들어간 디저트를 잔뜩 먹고 또 술을 마시며 해가지지 않는 밤 내내 축제를 즐긴다. 일 년 중 사람들이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다.
동네 교회에서 열리는 콘서트에 다녀왔다. 알아듣지 못하는 가사들 중 유일하게 귀에 들어오는 단어 ‘sommar'. 모든 노래가 스웨덴의 여름에 관한 노래였다. 한여름 밤 사랑에 빠진 남녀의 이야기, midsommar 전날 밤 잠에 들지 못하는 아이의 이야기, 여름에 주로 마시는 칵테일을 마시고 즐기자는 노래, 여름을 주신 신을 찬양하는 노래까지. 공연이 끝난 후 동네 사람들은 여름 계획이 무엇인지 물었고 요즘 해가 좋으니 집 마당에서 Fika (=디저트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스웨덴의 문화)를 하자고 초대한다.
아, 여름이다.
Karlskoga에 머무르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동네 아주머니들과 커피와 디저트를 왕왕 먹었고 매일 느즈막한 브런치를 만들어 먹었다. 자전거를 타고 옆 동네에 놀러가 공원에서 친구들과 바비큐를 해먹고 뛰어노는 아이들을 구경했으며, 특히나 더운 날에는 수영복 달랑 들고 호숫가에 뛰어들어 끝없이 파랑색인 자연을 만끽했다. 여러 사람들의 집에 초대받아 함께 음식을 해먹고 즐겁게 마신 후 기분 좋게 살짝 취한 채 백야 속을 걷고 걸어 집에 돌아오기도 했다.
나의 스웨덴에서의 여름의 나날에는 항상 함께 웃고 떠드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은퇴 후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도, 나와 같이 방학을 맞이한 학생들도 많았지만 직장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너네 일 안 해?’ 라는 질문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돌아오는 대답은 각양각색이다. ‘난 이번 한 달 전부 휴가 냈어’, ‘다음 직장으로 옮기기 전까지 시간을 좀 가지려고’, ‘여름에는 일주일에 3일만 일해. 목요일부터는 매일 자유야.’ ‘아이가 두 명이라 2년은 전부 유급 휴가라 난 계속 휴가야. 하하하.’
스웨덴은 144국중 4위의 경제대국이다. 동시에 5년 연속 세계 국가경쟁력 2-5위에 머무르는 작은 강대국이다. 국가 경쟁력은 경제 성과, 정부 효율성, 비즈니스 효율성, 인프라 등을 평가하는 지표로서, 스웨덴이 효율성을 가진 경쟁력이 있는 국가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렇게나 긴 휴가를 가지면서도 어떻게 ‘효율적으로 일 잘하는’국가가 된 것일까.
‘일을 잘 하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단순했다. 주어진 일을, 정해진 시간 내에 마쳐 좋은 성과를 내는 것. 단, 이렇게 할 수만 있다면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일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일하려면 충분한 휴식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에 모두가 동의하기에, 법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일 년에 25일의 휴가를 가질 수 있도록 보장된다. 주말과 법적 공휴일을 제외한 25일이며, 상병휴가 등은 당연히 제외된다. 회사에 따라 더 많은 휴가가 주어지는 곳들도 많다. 보상휴가 등을 합쳐 사람들은 보통 한 달 내외의 휴가를 갖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여름동안의 업무는 거의 마비상태라고 할 수 있다. 스웨덴 사람들은 ‘몇 월 며칠’ 이라고 하는 대신 ‘몇 째 주 무슨 요일’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보통 여름이 시작되는 23주부터 32주 까지는 중요한 미팅도 없으며, 회사의 중요한 결정도 내리지 않는다. 모든 것이 천천히 진행된다. ‘거의 대부분’ 휴가를 떠나기 때문. 또한 6월부터 8월까지는 모두가 4주의 연속된 휴가를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5월에 일을 시작하더라도, 주어진 휴가를 이용하여 한 달을 연속으로 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나 효율적인 사람들이 오래 일을 하지 않고 배길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을 해야할 때와 쉬어야 할 때의 구분을 확실히 두고, 짧은 시간에 효율을 내는 것에 최적화 되어있는 근무환경은 성과 뿐 아니라 사람들의 양질의 삶도 보장하게 되었다.
스웨덴 사람들에게 만약 여름이 없다면, 또는 여름에 쉴 수 없다면 어떠할 것 같냐는 질문을 던졌다. 돌아오는 답은 그런 상상도 하기 싫은 질문은 하지 말라는 핀잔뿐이다. 세계 각국 마다 서로 일을 하는 모양새나 휴일을 즐기는 방법도 다 다르지만, ‘일 할 때 일 하고, 쉴 때 쉴 줄 아는’ 스웨덴.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