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 3국 여행기] ㅡ산다는 건, 어느 플루티스트의

[발트 3국 여행기] ㅡ산다는 건, 어느 플루티스트의 깊은 호흡을 찾아서

by 박은아



[발트 3국 여행기] ㅡ산다는 건, 어느 플루티스트의 깊은 호흡을 찾아서


1장.

《시간을 건너는 여행자에게》


쉰이 넘으면, 조금 긴 여행을 떠나자고 마음먹었다.

이번에 우리의 눈에 들어온 나라는 발트 3국. 흔한 여행지가 아니기에, 의문과 질문이 함께했다. 그리고 나는 오래전부터 믿어왔다. 궁금증이야말로 여행의 가장 좋은 재료라는 것을. 몇 번의 실행을 했고 올해, 설레는 길 위에 섰다.


비행은 늘 떠남의 다른 말이었다.


2025년 5월 27일.

울산에서 김포, 그리고 인천공항에서 비로소 리투아니아의 빌뉴스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정확히는 핀란드를 경유하는 13시간짜리 여정이었고, 그 위에서 오랫동안 쌓여 있던 시간의 먼지를 털어내고 있었다. 오그리고 움츠린 나의 몸을 얹어서 마치 수십 개의 새벽을 이어 붙인 것처럼 길고 느리게 펼쳐진 그 비행 속에서, 묘한 고요를 만났다. 익숙한 땅을 떠날 때마다 세상은 조금씩 낯설어지고, 그 낯섦이 오래된 생각들을 흔들어 깨운다. 떠나는 건, 결국 ‘다시 살아내기 위해’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단순한 일탈이나 재충전의 의미를 넘어선 무엇이었다. 발트 3국을 향해 떠나고 있었고, 그것은 나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가만히 마주하는 여정이기도 했다. 삶을 구성하던 것들이 조금씩 방향을 바꾸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한때 오케스트라의 일원이자 연주자였던 나는, 이제는 나만의 음악을 쓰고, 강의하고, 글을 쓰는 음악 여행자가 되어 있었다. 이 모든 변화의 시작점엔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음반이 있었고, 그것을 발매한 후,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꿈꿔왔던 음반으로 ‘한국의 봄’이란 주제로 콘서트를 했다. 내 음악이 처음으로 세상과 마주한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나의 음악’으로 강의를 하고, 사람들과 삶을 이야기하고, 음악 너머의 의미를 묻는 인문학 콘서트를 이어왔다. 대학교들에서. 기업들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존재와 소리를 이야기해 왔다. 더는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틀에 갇혀 있지 않고, 나만의 클래식 콘서트를 듀오팀으로 아홉 번째인, 어쩌면 마지막이 될 이 무대를 앞두고 질문이 하고 싶었다. 살아 숨 쉬는 무대 위에서. 그리고 다시 “음악 후의 음악’을 꿈꾸기 위해.


그래서 이 여행은 단지 국경을 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계를 허무는 일이기도 했다.


이 여행의 서문을 열며 폴란드의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문장을 떠올린다. “우리는 모두 우연히 태어났다. 단 하나의 삶을 살고 있고, 그 삶은 우리의 선택이 아닌 우연과 반복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그 우연을 필연처럼 만들어내는 것이 인간의 힘이고, 예술의 사명이라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 나는 수없이 많은 경계를 지나게 될 것이다. 시간의 경계, 문화의 경계, 언어의 경계. 그리고 어쩌면, 나 자신의 낡은 습관과 두려움의 경계도. 그 모든 것을 넘기 위해 걷기로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처음으로 땅을 밟는 순간, 마치 인간의 걸음을 다시 배우는 기분이었다. 걸음은 생명의 리듬이며, 걷는 자만이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발트 3국의 첫 번째 나라인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는 그 풍경의 첫 장이었다.

이름조차 낯설었던 도시. 하지만 그 낯섦은 하루, 이틀이 지나자 곧 시가 되었고, 음악이 되었으며, 언어가 되었다. 익숙해진 자유함으로.


‘빌뉴스’ 이름의 어원은 ’ 비가 자주 오는 땅’, 또는 ‘물의 나라’를 뜻한다고 했다. 자연과 신화, 독립과 저항의 역사. 그 모든 것이 빌뉴스의 거리 곳곳에 흘러넘치고 있었다.

도시의 풍경은 고요했지만, 그 고요 아래 흐르는 시간은 뜨거웠다.

대성당의 묵은 돌에서, 우주피스 자치구의 낙서 같은 헌법에서, 그리고 국립도서관의 책 냄새 속에서 그것을 느꼈다.


한 나라의 이름이 왜 중요한지를 처음으로 깨달은 곳이기도 했다.

‘리투아니아’라는 발음 속에는, 말하지 못한 기억이 숨어 있었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그리고 리투아니아. 모두 ‘ia’로 끝나는 나라들. 이 끝자락은 어디서 왔을까.

나는 그 소리의 끝을 따라가며, 한 언어가 품은 세계관을 상상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세 나라는, 비슷한 이름이 아니라 비슷한 상처를 가진 형제들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나는 묻는다.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은 나의 자작곡 《Cui Bono》의 제목이기도 하다. 토마스 카일라일의 시이기도 한.

누구를 위하여 이 삶은 존재하는가.

누구를 위하여 이 노래는 울리는가.

그리고 누가, 누구를 위로하는가.


빌뉴스 여행 며칠째에 ’ 빌뉴스 필하모닉’을 통해 들었던 시벨리우스와 브람스의 연주는 이 질문에 대한 음악적 응답처럼 들렸다.

음악은 결국 사유이기에, 나는 여행의 사유를 음악처럼 기록하고자 했다.

소리 없는 악보 위에, 이 도시의 냄새와 기억을 적어 넣고 싶었다.


발트 3국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한 장의 음반에서 출발한 나의 여정은, 이제 세 나라의 시간과 언어와 마음을 건너는 기록이 되려 한다.

나는 그것을 ‘음악으로 걷는 마음 여행’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여정의 흔적이다.


여행은 늘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와 같다.

익명의 독자, 혹은 오래된 나 자신에게.

그리하여 나는,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삶은 거대한 작별과 작은 만남들로 이루어진다.

그러니 언젠가 당신의 마음이 지칠 때, 이 조용한 북쪽 나라들처럼, 낮지만 깊은 위로가 되어주기를.

낮게 울리는 음악처럼,

빛보다 느린 물결처럼,

나는 이 여행기를 당신에게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