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음악이 문을 여는 도시 – 빌뉴스 페스티벌의 밤 발트 3국 여행
[3장] 음악이 문을 여는 도시 – 빌뉴스 페스티벌의 밤
발트 3국 여행기] ㅡ산다는 건, 어느 플루티스트의 깊은 호흡을 찾아서
3장
리투아니아 <음악이 문을 여는 도시 – 빌뉴스 페스티벌의 밤>
빌뉴스에 도착한 지 사흘째, 그날은 이 도시의 음악 축제인 빌뉴스 페스티벌의 개막 연주가 있는 날이었다. 몇 달 전, 여행 계획을 세우던 때 우연히 이 페스티벌 일정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특히 오케스트라 연주를 만난다는 것은 내 여정에 어떤 장면을 남기게 될지 짐작하지 못할 정도로 기대감을 갖게 한다. 그런데 지금, 나는 낯선 도시에서의 첫 음악회에 가는 길에 있었다.
이 도시는 음악으로 문을 열고 있었다.
빌뉴스 페스티벌은 리투아니아의 대표적인 국제 클래식 음악 축제이다. 매년 6월 말에서 7월 초까지 개최되는 이 페스티벌은, 독립 이후의 리투아니아가 세계 속 문화국가로 자리 잡기 위해 얼마나 정성껏 자신들의 문화예술을 가꾸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1997년, 리투아니아 국립 필하모닉 협회에 의해 창설된 이 페스티벌은 해마다 유럽 각국의 연주자들을 초청하며, 현대음악과 고전, 실내악과 교향곡을 아우르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그중에서도 개막 연주는 리투아니아 오케스트라가 중심이 되어 자국의 자존감을 드러내는 공연으로 알려져 있다.
한 나라가 클래식을 어떻게 다루는지, 그리고 클래식이 어떻게 그 나라의 품격을 말해주는지를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공연은 단지 음악이 아니라, 이 나라의 내면을 만나는 일이라 여겨졌다.
공연이 열린 홀은 빌뉴스 국립 필하모닉 홀인데 클래식한 유럽풍 외관을 자랑하며, 섬세한 석조 장식과 대칭적 형태, 높은 아치형 창문이 특징이다. 전통적인 건축양식을 기반으로 화려하지 않고 단정한 고전미를 느낄 수 있다.
새벽문을 통과해 빌뉴스 올드타운의 주요 거리인 Aušros Vartųgatvė(아우슈로스 바르투 거리)를 따라가면 바로 필하모닉 홀이 위치하는데 실질적으로 두 장소는 300-400미터 이내로, 천천히 걸어도 5-7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었다.
새벽문을 지나면 곧장 구시가지로 들어가며, 거리 양쪽에는 중세와 바로크 양식이 섞인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이어지고 길에는 작은 카페, 기념품 가게, 고풍스러운 교회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돌로 포장된 좁은 보행자 전용 도로를 걷게 된다. 다양한 국적의 여행객과 현지인이 오가며, 거리에는 고요하게 성가나 악기 연주가 흘러나오는 경우도 많아, 문화적이고 생동감 있는 분위기였다.
오케스트라 홀이 가까워지면, 웅장한 고전 양식 건물이 돌담과 철제 울타리 너머로 모습을 드러냈다. 근처엔 타운홀 광장, 다양한 종교 건축물들도 가까워 리투아니아의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장면을 느낄 수 있었다.
내부로 들어서자 의외의 고요한 울림이 있었다. 벽은 나무로 마감되어 따뜻한 잔향을 머금었고, 천장과 객석의 경사는 음향이 고르게 퍼지도록 잘 설계되어 있었다. 나는 중간보다 약간 뒤쪽, 연주자들의 손끝을 또렷이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객석은 이미 많은 관객들로 채워져 있었고, 그들 대부분은 정장을 입거나 단정한 외출복 차림이었다.
단정하게 말려 내린 머리, 고운 실크 블라우스, 구두를 신고 조용히 프로그램북을 펼쳐보는 노신사.
아이를 데려온 가족도 있었지만, 아이들 역시 조용히 앉아 예의 바르게 연주를 기다렸다.
그곳엔 분명 클래식 음악을 향한 존중이 있었다.
연주는 두 파트로 나뉘어 있었다.
전반부는 이탈리아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협연하는 협주곡이었고, 후반부는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1번이었다.
지휘자는 리투아니아 출신이 아닌, 외국에서 초청된 이탈리아 출신의 지휘자였는데, 그 열정적인 손짓과 음악에 몰입하는 자세에서 나는 빌뉴스 오케스트라가 단지 테크닉이 아닌, ‘표현하는 음악’을 지향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협주곡이 시작되기 전,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낯선 도시에서 맞이하는 낯선 음악, 하지만 그것은 곧 ‘나의 공간’이 되어줄 것을 예감했다.
현악기들이 흐르기 시작했고, 바이올린 솔로가 등장하며 무대는 순식간에 긴장감과 기대감으로 채워졌다.
연주자의 활은 정확했으며, 음 하나하나가 공기 중에 명료하게 퍼졌다. 나는 플루트 주자로서, 종종 현악기의 음색이 어떻게 공간을 통과하는지를 감각적으로 느끼곤 하는데, 그날의 소리는 절제된 울림. 너무 드러나지도 않고, 너무 감추지도 않는.
무엇보다 지휘자와 협연자의 긴장감이 느껴지는 바로 이 도시, 바로 이 시간에만 가능한 음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