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시벨리우스, 절박한 저항의 서사시 – 북유럽의 울림이 빌뉴스를 가
리투아니아 <시벨리우스, 절박한 저항의 서사시 – 북유럽의 울림이 빌뉴스를 가르다>
그리고 잠시 후, 무대는 다시 정돈되고 관객들의 숨도 고요해졌을 때,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제1번이 시작되었다.
시벨리우스는 내가 오래도록 존경해 온 작곡가다. 그의 음악은 단지 북유럽의 자연을 묘사하는 것을 넘어, 핀란드의 정체성과 국민적 자긍심을 ‘음’으로 표현한 흔치 않은 작곡가였다.
시벨리우스가 이 교향곡을 작곡한 1899년은 핀란드가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시기였다. 당시 핀란드인들은 민족의 자유를 억압당하고 있었고, 시벨리우스는 자신의 음악을 통해 조국의 정체성과 정신을 지켜내고자 했다.
《교향곡 1번》은 그래서 단순한 서정이 아니라, 절박한 저항이 담긴 서사시였다.
나는 예전에 핀란드를 여행했을 때, 헬싱키 외곽에 있는 시벨리우스 공원을 찾은 적이 있다.
그곳에는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을 형상화한 시벨리우스 기념비가 있고, 옆에는 그의 흉상이 함께 놓여 있었다.
흉상의 눈빛은 슬프기도 하고 결연하기도 했다. 그 앞에서 나는 한참을 멈춰 있었고, 그 기억은 이날 빌뉴스에서의 연주와 하나로 이어졌다.
첫 악장이 시작되었다.
서늘한 클라리넷이 어둠을 가르듯 선율을 내고, 곧이어 전 오케스트라가 그 뒤를 따른다.
나는 마치 북유럽의 침엽수림 속을 걷는 듯한 기분이었다.
차가운 바람, 흐린 하늘, 그러나 그 속에 고요한 빛을 품은 나무들.
이 음악이 국경을 넘어 빌뉴스에서 울려 퍼지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
리투아니아 역시 일제 강점기의 우리 민족처럼, 과거 수많은 강대국의 지배와 침탈 속에서 언어와 문화를 지켜온 나라였기에, 이 교향곡은 하나의 보편적 언어가 되어 관객의 심장에 다가갔다.
음악이 절정을 향해 나아갈수록, 지휘자의 몸짓은 더욱 격렬해졌고, 관객들의 집중도는 더 깊어졌다. 마지막 피날레가 울려 퍼질 땐, 객석 전체가 하나의 ‘울림통’처럼 진동하는 느낌이었다. 연주가 끝난 뒤, 박수는 쉽게 멈추지 않았다. 나는 몇 분간 일어나지 못한 채, 그 여운 속에 앉아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 음악을 듣기 전 나는 근처의 작은 카페에 들러 캐러멜 마키아토를 한 잔 마셨다.
우유 거품 사이로 살짝 퍼지는 달콤한 시럽이 입 안에 머물렀고, 긴 여정의 피로를 한 겹 덜어주었다.
그 순간의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아니었다면, 이 격정적인 음악을 담아낼 그릇이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그날 밤, 음악이 우리를 어떻게 치유하고, 기억하게 하며, 어떤 도시에 새로운 정의를 내리는지를 깨달았다.
연주는 끝났지만, 나는 그 음의 잔향을 따라 조용히 거리로 나왔다.
조명이 꺼진 홀, 여전히 앉아 남은 여운을 삼키는 관객들, 그리고 고요히 흐르는 도시의 공기 속에, 음악은 아직도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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