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장. 발트 3국 여행기 -마지막 이야기

음악 후의 음악: 가장 깊은 호흡의 사명

by 박은아

16장. <발트 3국 여행기 -마지막 이야기>


<음악 후의 음악: 가장 깊은 호흡의 사명》


[발트 3국 여행기] ㅡ산다는 건, 어느 플루티스트의 깊은 호흡을 찾아서


탈린 오페라극장에서 백조의 호수 막이 내려온 후에도, 무대 위 차이콥스키의 선율은 귓가에 남아 끝없이 변주되었다. 백조 오데트와 흑조 오딜이 이 둘이자 하나였던 것처럼, 예술과 삶, 빛과 어둠의 모든 모순이 결국 하나의 진실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발트 3국에서 찾아 헤매던 ‘음악 후의 음악’’이었다.

25년 10월 10일 나의 듀오 팀 '시간 속의 시간'의 아홉 번째 콘서트 'Timeless—anywhere, everywhere'의 여운은 여전히 깊었다. 우리는 시간을 초월한 고전의 가치를 이 시대에 재현하려 고군분투했지만, 무명의 음악가로서 이 지난한 작업을 이어가는 것이 ‘누구를 위한 울림인가'라는 실존적 질문을 피할 수 없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은 무대 뒤에서 나를 기다리는 가장 낯익은 손님이었다.

그러나 이 여행, 특히 이 조용한 북쪽 나라들은 내 질문에 가장 명료한 해답을 주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플루티스트다. 플루트라는 악기는 밤(어둠)과도 같은 내면의 고통과 번뇌를 숨결에 담아 밖으로 밀어내야만 비로소 순수한 소리를 낸다. 어둠을 내어놓는 고통스러운 과정이야말로 가장 선한 빛을 내는 음악의 출발점인 것이다.

우리의 음악은, 결국 이 세상에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응답이었다. 시간을 초월한 음악을 통해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에게 진실한 위로를 건넬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바로 ’ 시간 속의 시간'이라는 이름 아래 무대에 서고, 내가 고군분투하며 한 음을 내는 이유이자, 이 모든 여정을 글로 기록하는 사명이었다.

걸음의 리듬이 악장이 되었던 빌뉴스부터, 소리 없이 깊은 말을 건넨 카우나스, 심심한 위로를 건넸던 쿨디바를 지나 탈린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여정은 '시간 속의 시간'이 무대 밖에서 써 내려간 11개의 악장이었다.

진정으로 좋은 여행지란, 그곳을 떠난 뒤에도 끊임없이 마음의 궤적을 돌아가게 만들어 내 안에 새로운 영토를 만드는 곳이었다. 나는 이 세 나라의 고요하고 강인한 마음속에서, 가장 깊은 호흡으로 다시 한번 삶을 살아낼 힘을 얻었다.

나는 이제 안다. 가장 깊은 호흡으로 빚어낸 소리처럼, 그 어둠을 밀어낸 후에야 만나는 내면의 진실을.


에필로그: 가장 깊은 호흡으로

여행은 늘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와 같다. 익명의 독자, 혹은 오래된 나 자신에게.

그리하여 나는,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삶은 거대한 작별과 작은 만남들로 이루어진다.

그러니 언젠가 당신의 마음이 지칠 때, 이 조용한 북쪽 나라들처럼, 낮지만 깊은 위로가 되어주기를.

가장 깊은 호흡으로 빚어낸 소리처럼,

빛보다 느린 물결처럼,

나는 이 여행기를 당신에게 건넨다.”


[발트 3국 여행기] ㅡ산다는 건, 어느 플루티스트의 깊은 호흡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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