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흐르는 폭포와 걷는 마을 – 쿨디가의 하루〉 발트 3국 여행
14장
〈흐르는 폭포와 걷는 마을 – 쿨디가의 하루〉
발트 3국 여행기ㅡ산다는 건, 어느 플루티스트의 깊은 호흡을 찾아서
폭포를 찾아가는 여정에는 언제나 미지의 설렘과 해방감이 깃들어 있다. 특히 이번 여행은 더욱 특별했다. 유럽 대륙을 누비는 여정에서 생애 처음으로 렌터카 열쇠를 손에 넣은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경험은 언제나 설레게 하고 이 열쇠가 선사하는 자유로움은 가슴을 한층 더 벅차오르게 만들었다.
라트비아의 소도시 쿨디가(Kuldīga)로 향하던 길, 우리는 창밖으로 쉴 새 없이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황금빛 유채꽃이 가득한 밭을 따라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을 바라보며,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번 여정의 가장 빛나는 클라이맥스가 될 것이라 확신했다.
쿨디가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폭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내비게이션에 찍힌 명소의 이름은 “Venta Rapid”—단순한 자연물이 아닌, 유럽에서 가장 넓은 강폭을 가진 폭포라는 압도적인 수식어는 우리의 기대를 단순한 흥분을 넘어 장엄하고 웅장한 예감으로 가득 부풀게 만들었다.
예상과는 달리,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전혀 달랐다. 높이는 2미터 남짓에 불과했다. 나도 모르게 “애개…”라는 감탄사 아닌 탄식이 튀어나왔다. 웅장하게 떨어지는 물줄기와 장대한 수직 낙차를 기대했던 마음에는 순간 실망이 스며들었다. 그래도 우리도 마을 사람들처럼 폭포 가까이 다가가 보기로 했다. 다리에서 내려와 초록 풀밭을 한 걸음씩 내딛을수록, 폭포에서 울려 나오는 장엄한 소리가 점점 더 귓가를 가득 채웠다.
폭포가 그리 높지 않다는 건 도착하자마자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유럽에서 가장 넓은 폭포’라는 말과는 약간 다른 인상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낮은 낙폭에서도 웅장함이 느껴졌다.
폭포의 소리는 마치 마음속 깊은 곳을 부드럽게 휘젓는 고백 같았다. 어디선가 오래전부터 흐르고 있었던 것 같은 소리. 웅장한 소리는 그 높이와 무관했다.
물이 부딪히는 소리는 오래된 마음의 먼지를 털어내는 듯했다.
조금 실망했던 기대는,
그 소리를 들으며 완전히 바뀌었다. 폭포와 마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단지 들을 뿐이었다.
그 시간 속에서 마음이 씻기듯 정화되어 갔다.
이것이 바로, 여행이 내게 주는 선물이었다.
물이 부딪히는 낮고 단단한 소리.
실망할 줄 알았던 그 순간이,
오히려 잊을 수 없는 시간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여행이었다.
기대와 다른 현실 속에서 다른 시각으로 보는 법을 배우는 것. 청각으로 들어온 쿨디가의 폭포 소리는 영원히 마음으로 들어왔다.
높이는 낮아도, 폭은 넓었다.
’ 유럽에서 가장 넓은 폭포‘라는 명성에 걸맞았다.
실망은 물결처럼 걷히고, 그 소리는 깊은 울림이 되어 가슴 안에서 울렸다. 비가 오락가락하던 오후의 흐린 빛이 강물 위에 퍼지고, 잔잔한 물거품과 함께 폭포 소리는 낮게, 그러나 확실히 속삭였다. 그 순간, 자연의 소리라는 것이 단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Venta Rapid.ㅡ
라트비아어로 Venta Rumba.
강은 이 마을을 관통해 흐르며, 폭포를 만든다. 전설에 따르면 이 강은 한때 연어가 뛰어넘던 곳이란다. 실제로 과거에는 연어가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장관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연어의 수가 줄었고, 물고기를 위한 작은 사다리가 옆으로 마련돼 있다. 그 사소한 구조조차 이 마을이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증표였다.
그리고 마을에는 또 하나의 작은 폭포가 있다.
이름은 Alekšupīte.
마을 중심을 흐르는 이 작고 얕은 하천은 강이라 부르기도 애매할 정도지만, 거리와 집들 사이를 지나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유럽에서 유일하게 하천 위에 주택이 세워진 도시 중 하나라는 사실은 여행자를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어떤 이는 이곳을 ‘작은 베네치아’라 부르기도 한다. 폭포는 마을 안쪽 좁은 골목 끝에 있었고, 그것은 정말 ‘귀엽다’는 형용사가 어울릴 만큼 소박하고 사랑스러웠다.
Alekšupīte는 ‘알렉스의 물줄기’라는 뜻을 가진 라트비아어 이름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오래전 이곳에는 Alekš라는 이름의 남자가 있었고, 그의 집 옆으로 흐르던 작은 물줄기가 지금의 폭포가 되었다고 한다. 전설과 현실이 나란히 흐르는 이 마을에서, 나 또한 오래전 이곳을 걸었던 누군가의 발자취를 밟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폭포에서 나와 우리는 마을을 천천히 걸었다. 빨간 벽돌로 된 오래된 다리와 돌길, 작고 소박한 가게들, 그리고 붉은색 지붕이 이어진 골목길은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흐리다가 다시 내리는 비, 그 빗속에서도 데이지가 핀 공원의 풍경은 환상적이었다.
공원의 이름은 ‘Kuldīgas Pils parks’ 예전 궁전 터였던 그 자리는, 지금은 시간의 고요함만이 흐르는 분수와 벤치가 있는 평화로운 정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는 데이지 꽃이 별처럼 박힌 잔디 위에서, 생애 첫 드론을 하늘로 쏘아 올렸다. 작은 날갯짓 소리와 함께 솟아오른 드론을 따라, 우리는 마치 어릴 적 술래잡기 놀이를 하듯 잔디밭을 가로질러 뛰어다녔다. 물안개 자욱한 폭포 주변에서 드론이 잠시 실종된 듯해 당황했던 순간도 잠시, 드론이 담아 온 장면을 확인하는 순간, 확신했다. 여행은 결국 가장 눈부신 기록이라는 것을. 비가 씻어내고 간 그날의 생명력 넘치는 색감이 스크린 위에서 눈부시게 되살아났다.
쿨디가의 마지막 여정: 고요한 위로
그리고 그날 들렀던 식당— 여정의 끝이 다가옴을 알리듯, 하늘은 부슬부슬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Kursas Zeme‘라는 이름을 가진 레스토랑이었다. 우리는 빗소리가 가장 가까이 들리는 야외 테라스에 망설임 없이 자리를 잡았다. 마치 동화책 속으로 걸어 들어앉은 마냥, 세상과 분리된 듯 신기하면서도 한없이 편안한 기분에 잠겼다. 이 작은 마을에 하루 더 머물며 비 오는 풍경 속에 온전히 젖어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움이 밀려왔다.
도시, 특히 수도 중심의 여행은 늘 빠른 속도와 넘쳐나는 정보 때문에 시야를 좁히고, 나아가 여행의 본질적인 시선까지 잃어버리게 하는 각박함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손수 운전하며 개척한 이 렌터카 여행은 달랐다. 순간순간을 스스로 선택하고 하나하나 곱씹게 하는 묵직한 힘이 있었다.
그곳에서 맛본 따뜻한 새우 수프와 파스타는, 마치 이 마을 쿨디바와 영혼이 닮아있는 듯했다. 혀를 자극하지 않는 약간 심심하면서도 잔잔한 이 요리들은, 그 자체로 소리 없는 배려이자 조용한 위로였다. 음식이 입속에 머무는 동안, 창밖으로 비는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고, 마침내 비가 그친 오후의 안도감이 온몸을 감쌌다. 식당 안 직원들의 부드러운 매너와 섬세한 배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모든 것이 마치 "쿨디가에 잘 왔어, 이제 편안히 잘 가렴" 하고 마을 전체가 우리에게 건넨 따뜻한 손짓처럼 느껴졌다. 쿨디가는 떠나는 이에게 가장 완벽한 작별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그날, 나는 알게 되었다.
진정으로 좋은 여행지란 그저 눈으로 담는 풍경의 집합이 아니라, 그곳을 떠나 물리적 거리가 멀어질수록 오히려 마음의 궤적이 끊임없이 그곳으로 돌아가 새로운 영토를 만드는 곳이라는 것을.
<발트 3국 여행기ㅡ산다는 건, 어느 플루티스트의 깊은 호흡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