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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이 Mar 24. 2024

부모님께 노웨딩 설득하기 : 실패

(근데 딸이 불도저라서 성공)

제목부터 불효의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매거진 이름을 '불효일기'로 바꿔야 하나 싶다.


내가 결혼식을 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동료 선생님들은 너무 멋지다며 경탄해 마지않았다. 어떤 분은 본인도 그러고 싶었으나 실패했다며 부러워하셨고, 어떤 분은 '멋지다. 선생님은 왠지 그럴 것 같았어'(?) 하며 이상하게 납득하셨다. 친한 선생님 또한 결혼식 대신 직계가족과 식사만 할 거라는 소식을 전했다. 다시 말해 내가 사는 세상에선, 결혼식을 하지 않는다는 게 정말로 아무렇지 않았다. 난 결혼식을 하지 않기로 애써 다짐한 게 아니라, 여러 결혼의 형태 중 그 방식을 선택한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내가 현실적인 이유로 결혼식을 '포기'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결혼식을 주제로 통화를 할 때마다 엄마의 목소리가 그렇게 처창할 리 없었다. 


나는 나대로 답답했다. 부모님의 착각과 달리 난 그런 중요한 결정을 두고 내 욕구를 억제할만한 위인이 못됐다. 오히려 내가 원하는 모든 걸 관철한 것이었으니 우리 부모님은 애달파하기보단 차라리 너무 발칙하다며 방방 뛰어야 마땅했다. 

엄마는 '성대하게', '남 부럽지 않게', '귀한 딸', '평생 한 번뿐인' 등의 말들을 다양한 조합으로 섞어가며 날 설득하셨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귀하게 키운 딸이 남 부럽지 않게 축하받을 수 있도록 평생 한 번뿐인 결혼식을 성대하게 올려주고 싶다'는 거였다. 안타깝지만 '귀한 딸' 외에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그래도 나는 자식을 키워본 적이 없었으니 오만하게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사실 못내 억울했다. 

처음엔, 그러니까 바로 직전 글을 쓸 때까지만 해도 엄마는 내 결정에 "얼씨구? 참나~ 어이구." 정도의 대꾸만 하셨지, 결사반대하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그걸 내 멋대로 허락으로 해석했고,

"결혼식 안 할 거야. 진짜 안 한다고 했어. 알겠지?"

하고 글자 하나하나에 힘주어 못을 박았다. 

그게 부모님 가슴에 박힐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엄마의 미적지근한 반응을 허락으로 해석하고 본격적으로 추진하려는 순간, 마침내 엄마가 '식을 올리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치신 거다. 

알고 보니 늘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아빠는 다 네 생각에 따를 거니까."라고 평생 내 편만 들어주시던 아빠마저도, 술에 취하셔선 내 노웨딩 선언에 못내 가슴 아파하셨단다. 


부모님은 웬만해선 내가 하겠다는 일에 반대하신 적이 없었다. 

내가 아무리 주로 내 멋대로 살아왔다고 해도, 그쯤 되면 생각을 다시 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아주 일반적인 보통의 결혼식을 하는 상상을 했다. 아주 어렵지도 않았다. 이미 시스템은 마련되어 있었고 남들이 모두 하는 대로 하면 그만이었다. 그럼 불필요하게 흩날릴 뒷말과 추측도 없을 거고, 주변인들에게 구구절절 내 신념을 설명해야 하는 수고도 필요치 않을 거였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억지로 웃고 있을 날 떠올리니 갑자기 울화통이 터지는 거다. (내가 생각해도 '그럴 정도의 일인가?' 싶다. 내 성질이 이렇게 더럽다) 다른 신랑신부들이 부모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눈물을 훔치는 동안 난 울분에 차서 이를 꽉 깨물고 울 게 분명했다. 평생을 내 맘대로만 살면 이렇게 된다. '내 인생'에 대한 선택권을 빼앗기는 순간 말도 안 되는 삐딱선을 탄다. (이 부작용은 결혼 준비 내내 날 괴롭혔다.)


악에 받친 채 예식장으로 걸어 들어가긴 싫었다. 그러니 난 엄마에게 한참을 설명했다. 챕터 1의 주제는 '내가 느끼는 결혼식의 무의미함'이었고, 다음 챕터는 '그 무의미한 순간을 위해 낭비될 시간과 노력과 돈'이었으며, '주목받고 싶지 않은 내 성향'과 '다양한 주변사례'에 더해 마지막 즈음엔 '(딱히 의미도 없는데) 애매하게 아는 사람들의 주말을 뺏는 게 미안하다'는 소소한 얘기까지 덧붙였다.

엄마, 아빠가 축의금을 회수하고 싶으시다면 얼마든지 계좌번호를 박아 넣은 모바일 청첩장을 따로 만들어 드릴 것이고, 우리는 축의금을 받지 않는 대신 식대가 크게 나가지 않을 테니 어차피 '또이또이'라는 경제적 대책까지 부록에 알차게 실었다. 논리에 빈틈이 없었다. 데카르트가 덤벼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내가 너무 확고하다는 걸 아신 엄마 목소리는 점점 울멍울멍해졌고, 둘 중 하나는 상처받아야만 하는 상황에 나도 머리가 복잡해졌다. 소위 '요즘 사람'들에겐 다양한 결혼 형태가 개성이자 합리적인 선택일지 모르나 혼주들에겐 서글픈 선택일 뿐이라는 것이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점점 분명해졌다. 


왜 다들 부모님의 반대 때문에 보통 예식을 한다는 건지 알 것 같았다. 

부모님께는 그 뻔한 과정들이 자식을 자랑하는 자리이고 자식을 끝까지 키워냈다는 선언이며, 장성한 자식의 새로운 가족을 소개하는 데뷔무대이고. 뭐 그런 모양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인생에 화려한 순간의 점을 찍는 것보다는 내가 연필을 쥐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내가 그리는 그림에 내가 원하지 않는 반짝이를 붙이고 싶지 않았다. 간단히 말하자면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하고 싶었다. 게다가 행복한 결혼은 성대한 예식이 아니라 그 후의 삶으로 결정되는 게 아닌가. 도대체 고작 시작하는 날이 왜 그렇게 삐까번쩍해야 하는지 난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예식날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자랑스러운 자식임을 증명할 자신이 있었고, 새로운 가족의 데뷔무대는 직계가족을 모신 자리에서 조촐하기보단 끈끈하게 마련될 거였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딱 그 정도다.

(*일반적인 예식이 '내' 성향에 맞지 않을 뿐, 그 모든 과정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모두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리고 아주 다행스럽게도, 시부모님이 되실 분들은 흔쾌히 허락해주시다 못해, 현명한 결정이라며 응원까지 해 주셨다. 


나는 결국 잠깐의 불효를 저지르기로 했다. 결혼식은 올리지 않는다. 

우리 부모님도 평생 그래오셨듯, 결국 내 뜻을 수용해 주셨다. 


부채의식이 없는 건 아니다.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는 건 언제나 불편한 일이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내 삶의 그림에 결혼식은 없다.

별로 화려하지 못할진 몰라도, 마음에 쏙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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