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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츄선생 Aug 15. 2023

성장일기 3일째

나를 옭아매던 쇠사슬, 그것을 풀어내기

성장일기 3일째.

아침이 되면, 커다란 불안감이 느껴졌던 것이 요즘은, 많이 줄어들었다.


최근 일하면서, 심장에 통증을 느낄 때, 압박감을 느낄 때, 썼던 글을 보았다.


 나는 바뀌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이 심장 통증을 적으로 보고, 간주하고, 이 불안을 무조건 바꾸어야만 하다고

현실 바꾸기, 하려는 것은 나를 쓸모없이 대하는 마음이다.

나는 힘들 때 머릿속 판타지를 동원하기도 하고, 무슨 방식으로든 나를 위로한다.

그 방식들은 다 내가 조금 지치고, 힘들 때 위로하는 방법이고,

다 괜찮다. 나는 있는 그대로 가치 있는 사람이다.


내 두려움을, 그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무가치해질까 봐 무능해 보일까 봐, 어떤 작은 오점을 허용하고 싶지 않아 하는 마음, 이 마음. 오히려 나약한 마음이다.


 



맞다, 나는 바뀌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 불안을 적으로 간주하고, 얼른 이 불안을 버려 도피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방법이다. 불안은 감정일 뿐이며, 그 불안이란 에너지 역시 나를 방어하기 위해 오는 것이기에, 저항하지 않고, 수용해 보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우리는 꼭 무언가가 되어야 할까?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욕망을 엿보며,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애써야 할까?


내가 아무것도 아닐까 봐, 평생 두려워하고, 이거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지나치게 애쓰는 삶, 이것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면, 얼마나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물론, 노력은 가치 있다.


하지만, 그 노력에 동반된 자기혐오는?


다른 사람에 비해 가진 것이 없다고, 능력이 출중하지 않다고, 비하하고, 비난하며 스스로를 혐오하고, 깎아내리고 하는 일들이 과연, 나 자신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누군가에게 허점을 잡히지 않기 위해 지나치게 노력했던 그 기간,


그 시간이 정말이지 내게 의미 있었을까?


내가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정신없이 피투성이가 되어 달려들었던 시간은, 어린 시절엔 악몽이었고, 성인이 된 이후엔, 또 다른 불안함과, 불안함이 사라지면, 그 자리엔 외로움과 공허함이 들어앉을 뿐이었다. 어쩌면, 과한 문장일지 모르지만, 나를 기만하고, 유기하는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내가 그럼에도,

계속 이 행위를 지속했던 이유는,

이 질문을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질문에 대한 답을 정해놓은 채 말이다.

너는 의미 있는 존재이니? 살아갈 만한 존재니? 남들보다 우월한 사람이니?


대답은 애매모호했고, 그래서 기준이 없는 완벽과 성취를 쫓았다. 두려움을 최대한 멀리하려 애쓰며.



난 가치 있고, 의미 있게 그러나 성취를 쫓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렇다면, 사실,

스스로에게 말해주면 될 일이었다.

그래, 너는 가치 있고, 소중한 사람이야.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구태여

쓸모 있다 확인시켜 주지 않아도, 너의 삶은 있는 그대로가 소중해. 이렇게.


 

하지만, 진실은, 나는 나 자신을 한 번도 귀하게 대한 적이 없었다. 

그 진실을 체감한 순간, 나는 무너졌다. 왜, 무엇을 위해서? 그토록 달려온 거지?


도대체 이 끝에 뭐가 있다고 생각한 거지? 하루하루, 그저 노력했고, 오늘도 불안을 피해 어떻게든 살아남았다는 위안으로 살아왔는데, 그게 내 삶의 전부인데, 그 삶이 너무 하잘 것 없이 느껴졌다.


 

홀로 있을 때, 더 이상 우울해지고 싶지 않고, 감정과 깊이 연결되어, 나를 완전히 수용해보고 싶다고 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나는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다. 아주 오래전, 묶여 있던 쇠사슬을 풀지 못했다. 떠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지금은 힘들지만, 언젠가 행복할 장밋빛 미래가 날 기다릴 테니까. 하지만, 미래는 기다리지 않는다. 미래는 현재와 선택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지, 결코 나를 기다려주는 일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오늘 했던 생각을, 내일 또 할 거고, 내일 할 생각을, 그 모레 또 한다면, 결국 내가 그렸던 자유는 오지 않을 것이다. 이 쇠사슬을 풀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고, 나에게 그럴만한 힘이 있다는 것이다.  


분명, 나는, 분명! 다시 길을 잃고, 수몰되고, 손 까닥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하며 자괴감에 빠지겠지만, 그럴 때마다 이 일기를 보면서 상기할 것이다. 지금의 감정을, 기억할 것이다. 분명, 내 안에 쇠사슬을 풀 힘이 ‘존재’하고, 나는 그 ‘힘’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지겹도록, 질리도록 상기할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상기하길 바란다. 혹여라도 당신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된다면, 지나칠 만큼 무언가에 압박을 느끼고 있다면, 내가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있는 인간일까, 그 질문을 던지게 된다면, 어딘가 마음 한가운데가 텅 비어있는 거 같다면,


길은 내가 만들어 나가는 거라고, 나는 꽤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말해주길 바란다. 질리도록, 지겹도록 말해주길 바란다.


아무리 말해도, 모자람이 없는 말이니까. 



실제로 당신은, 공허함에 외로움에 수몰되어 허우적거리고 있는 어딘가에서도 분명, 빛나고 있는 사람일 테고, 희망을 가지고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나가고 있는 사람일 테니까. 그러니 고통 속에서도 빛을 찾으려고 애쓰는, 그런 당신을, 단비처럼 충분히 적셔주었으면 좋겠다. 위안의 말들로, 잘하고 있다고, 정말 잘 살고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고. 너만큼 당차고, 씩씩하게 걷는 사람을 보질 못했으니, 이제부턴 긴장 내려놓고, 좋아하는 것을 충분히 음미하며, 너의 속도로, 너의 시선으로 세상을 걸어 보았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말해준다면. 좋겠다.


 


그럼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 태양이 없는 가운데서도 꽃을 피우는 방법을 알 수 있을 테고, 폭우가 내린다 해도 그 속에서 춤을 추는 여유를 지녀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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