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 휴대폰은 ever폴더폰이었다. 집이 부유했던 것도 아닌데 엄마가 사주셨다. 심지어 사달라고 조르지도 않았다. 갖고 싶다는 생각도 간절하게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자고 일어나니 휴대폰이 생겨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반에서 휴대폰을 가진 친구가 2-3명 밖에 되지 않았었는데. 나를 데리러 올 수도 없고, 내가 집에 잘 들어왔나 확인하기 어려웠던 직장인 엄마는 내 귀가길이 걱정이 되셨던 걸까? 하긴, 그때 사회 분위기가 흉흉하긴 했다. 유괴니, 납치니, cctv가 잘 되어 있던 시절도 아니었고. 등등의 생각을 해보아도 그 시절 엄마는 참 대단했던 것 같다. 무척 감사하다.
그 이후로 여러 가지 휴대폰을 거쳤다. 애니콜, 모토로라, 싸이언 등을 썼던 것 같다. 그 와중에 sky는 좋아하지 않았다. 오빠가 sky 휴대폰을 좋아했는데 그걸 따라하기 싫었던 것 같다. (sky 휴대폰 하니 생각나는 사건 하나, 오빠가 휴대폰을 산지 일주일 만에 잃어버려서 엄마한테 크게 혼났었다.)
모토로라 슬라이드 휴대폰을 가장 좋아했다. 지금도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휴대폰이다. 슬림하고 화면이 컸고 키감이 좋았다. 키패드에 들어오는 조명도 은은하고 예뻤다. 그렇지만 너무 좋아하면 빨리 떠난다고 했던가. 고등학생 때 매우 짧은 기간 교제했던 남학생과 독서실에서 장난을 치다가 3층 계단에서 떨궜다. 그것도 내가 아니라 그 녀석이 떨어뜨렸다. 그때 내 돈으로 산 것도 아닌 주제에 대인배 행세를 했다. 나는 연신 괜찮다고 했었고 그 녀석은 미안한 마음에 밥을 사줬던 것 같다. 보통은 아량을 베푼 사건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스스로 잘했다고 할 텐데, 이 사건은 그렇지 못하다. 오래라도 사귀었다면 모를까, 한 달 정도 교제한 남학생이 내 인생 휴대폰으 떨어뜨리던 그 날을 나는 아직까지 잊지 못한다.
그리고 생각나는 휴대폰이 캔유 블링블링이다. 그 녀석도 조명이 아주 예뻤다. 두툼한 사각형의 폴더폰이었는데, 예쁜거 말곤 볼게 없었다. 화면이 커서 액션퍼즐패밀리라는 휴대폰 게임을 하기에 좋았다. 친구에게 빌려주었다가, 그 아이가 수업시간에 게임을 하는 바람에 일주일 간 휴대폰을 압수당한 적도 있다.
나는 남들이 잘 쓰지 않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부터 유행을 따라가는 걸 싫어했고, 남들과는 항상 다른 걸 사려고 했다. 마치 고등학생 때 north face 바람막이가 유행했으나 나만 nike 바람막이를 입은 것처럼.
이 이상한 취향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정점을 찍는다. 바로 모두가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나만 시대를 역행하여 blackberry를 쓴 것이다. 바로 블랙베리 큐텐이라는 모델. 디자인은 정말 예뻤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마법같은 녀석이다. 실물로 봐야 한다. 내 손에 들려 있을 때의 쾌감은 상당하다. 예쁜 것은 최고다. 사람도 물건도 디자인이 주는 행복감은 실로 엄청나다.
그러나 예쁜 쓰레기라는 수식어답게 진짜 쓰레기같았다. 대학교 졸업 직후라서 일을 했었다. 카카오톡 단체방에 초대되어 일을 해야 하는데, 단체방에 접속해서 사진 한 장 받는 것도 힘들었다. 사진이 픽셀 단위로 열렸다. 한국인이 제일 답답해하는 게 인터넷 느린 거라던데, 이때 인내심이 많이 향상되었다. 누군가 말이라도 많이 하면 렉이 걸렸다. 나만 대답이 느렸고, 나만 느리게 웃었다. 마치 다른 시간대에 사는 것 같았다. 대답을 하고 싶어도 전송이 안되어 내 대화가 나의 카톡방 안에 갇혀 있었다. 결국 보다 못한 상사가 와서 너 휴대폰 좀 바꿔라, 라고 했다.
요즘 스마트폰은 패션의 개념으로 들어선 것 같다. 요즘 지하철엔 상수룩을 입은 20대 청년들이 애플 무선 헤드셋을 액세서리처럼 달고 다니는 걸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또 어떤 여자들은 아이폰 쓰는 남자만 선호한다는 웃긴 얘기도 들었다. 삼성 z플립을 다꾸(다이어리 꾸미기)하듯이 꾸미는 것도 유행이라고 했다.
3n살의 입에서 나오기에 어울리지 않는 말일 수도 있지만, 참 세상 많~이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