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텀블러를 잘 쓰는 편이다. 이전 회사에서는 회사 카페를 이용할 땐 무조건 텀블러를 사용했다. 외부 카페에 갈 때도 틈틈이 텀블러를 챙겼다. 300원에서 500원 할인해주는 혜택도 좋았지만 진짜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야겠단 경각심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때 회사 사람들은 나에게 ‘역시 깨어있는 사람’이라는 무시무시한 각주까지 달면서 칭찬해주었다.
텀블러는 보온, 아이스용, 보냉 다 되는 용도로 구별이 잘 되어 있다. 사실 텀블러는 굿즈로 만들기 가장 만만한 제품인 것 같다. 로고를 각인해도 잘 보이고 그림을 그려도 눈에 띤다. 특정 컬러를 입혀서 어떠한 원하는 광고 효과를 전달하기가 용이한 모양새다. 기업의 입장에선 환경을 생각한다는 이미지도 입힐 수 있으니 참 좋은 물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어디에나 텀블러가 존재하지만, 텀블러를 사용하는 사람은 많이 없다. ‘그린워싱’의 정점이다.
나는 텀블러를 돈 주고 사본 적은 없고 모두 선물 받았다. 엄마가 죽통으로 쓰라고 준 락앤락 보온병, 친구가 생일 선물로 준 벤티 사이즈의 스타벅스 아이스컵, 모 작품에 참여할 때 캐릭터 페어(*나는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작가다) 출품한다고 생산한 굿즈 등이 전부다.
확실히 성능은 락앤락이 제일 좋다. 아침에 뜨거운 물 받아놔도 점심까지 따뜻하다. 굿즈로 만든 텀블러는 헬스장에 들고 다녔었는데 물을 마시면 자꾸 줄줄 새서, 땀인지 물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친구가 준 스타벅스 텀블러는 예쁘긴 예쁘다. 튼튼한 느낌은 부족해서 땅바닥에 떨어뜨리면 와장창 깨져서 민폐녀가 될 것 같지만, 컬러와 로고는 만족스럽다.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는 텀블러 할인이 사라지고 직원 할인이 존재한다. 직원 할인 및 텀블러 할인 같이 해주면 좋을 텐데. 머그컵을 들고 내려가서 커피를 받을까 생각도 했는데, 회사는 옮긴지 얼마 안되어서 살짝 눈치를 보는 중이다. 조금만 더 적응하면 머그컵을 들고 1층 회사 카페로 내려가야 겠다.
제주도에 출장 갔을 때 스타벅스를 들렀었는데, 그곳에서는 리유저블 컵에 커피를 담아 제공해주었다. 보증금 1000원을 내고 그 컵을 구매한 후, 다시 반환하면 1000원을 돌려받는다. 제주도 스타벅스에는 일회용 컵이 없다. 그래서 기념으로 리유저블 컵을 서울까지 들고 왔다. 나름 튼튼하니 나쁘지 않다.
아무튼 텀블러! 이제 그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진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