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화장의 역사는 20살부터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파운데이션과 아이섀도우, 아이라이너를 사용했다. 그 전까지는 립글로즈, 립스틱, 틴트 주로 색조를 입술에 몰빵했다. 다른 화장을 할 줄도 몰랐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고, 만약 했다치더라도 엄마에게 크게 혼났을 것이다.
20대 초반에는 화장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어울리지도 않는 bb크림을 바르고, 아이라인 꼬리를 길게 빼기도 했다. 손톱도 컬러풀하게 칠하고 다녔던 것 같다. 그럼에도 동기들 중에 무난한 편이었다. 동기들의 헤어는 주황색, 노랑색, 빨강색 난리도 아니었다. 컬러 레깅스가 유행했고, 기하학 무늬의 치마가 유행했다. 분홍색, 하늘색 점퍼나 인디핑크, 다홍 계열의 마이가 유행했다. 누가 누가 더 튀게 입나 내기라도 하는 듯 보였다. 천만 다행인 것은 이 시기가 1년 정도만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패션 격변의 시기였다.
나는 현재, 화장을 거의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섭렵하고 난 후에야 내가 어떤 화장이 가장 잘 어울리는 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한 듯 안 한 듯한 자연스러운 얼굴이 가장 낫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박 시 의견 존중) 피부엔 썬크림만 바르고, 눈썹은 숱이 많은 편이라 그리지 않는다.
약속 있을 때, 이 약속도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만 화장을 한다. 오랜만에 만났다는 건, 또 한참 동안이나 볼 일이 없다는 건데. 상대방의 기억 속에 사람다운 몰골로 남아있고 싶은 바람에서 화장을 한다. 썬크림을 바르고, 컨실러로 다크써클이나 잡티를 가리고, 최애 컬러인 말린 장미 색상의 섀도우를 눈덩이에 바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일회용 렌즈를 낀다. 평소엔 안경순이다.
그런데 쌩얼의 안경순이도 포기할 수 없는 아이템은 바로, 립스틱이다. 립스틱만 발라도 얼굴이 화사해진다. 사람에게서 혈색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다. 누디한 색상으로 풀립을 칠하고, 가운데에 브릭 색상을 칠해 투톤을 만들어 준다. 입술 디폴트다. 이렇게 칠하면 자신감이 12 정도 상승한다. (누디한 색상? 브릭 색상? 남자분들에겐 다소 생소한 색상 용어일 수 있겠다.) 누디한 립스틱을 손가락에 찍어 볼에도 바르면 얼굴에 통일감이 생긴다. 자신감이 5 정도 더 상승한다.
어느 인플루언서는 립스틱을 찍어 눈덩이에도 바르는 스킬을 선보였다. 립스틱 하나로 화장을 뚝딱 완성하는 것이다. 나는 차마 눈덩이에는 바르지 못했다. 눈덩이가 벌개져서 알레르기 올라온 사람처럼 보일 것 같기도 하고, 나만 쓰는 립스틱이지만 그리 청결해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 립스틱으로 싸인을 해보고 싶다. 박재범이 팬이 건네 준 립스틱으로 싸인하는 영상을 봤는데 섹시해 보였다. 빨간 립스틱이 좋을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빨간 립스틱이 없다. 싸인은 펜으로 하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