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ow
찢어 죽일 듯 협박하던 추위가 자리를 비켜주었다.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리는 날은 날씨가 그리 춥지 않다. 그래서 밀푀유나베처럼 옷을 겹겹이 껴 입지 않아도 된다. 어릴 때부터 궁금했다. 날씨가 영하권이기 때문에 비가 아닌 눈이 내리는 것일텐데, 왜 눈 오는 날은 그리 춥지 않은 거지? 그래서 지금 바로 검색해봤다. 이걸 지금에서야 알게 되다니. 참나, 이래서 공부를 못했나.
[눈 오는 날 날씨가 따뜻한 이유]
젖은 옷을 입고 있거나, 몸에 묻은 물이 마를 때 추위를 느낀다. 이렇게 물이나 얼음이 수증기가 될 때는
주변의 열을 뺏어간다. 반대로 수증기가 물이나 얼음이 될 때는 열을 방출하게 된다. 이것을 '승화열' 이라고 한다. (*승화 : 고체가 액체 상태를 거치지 않고 기체로 변하거나 기체가 직접 고체로 변하는 현상) 이 승화열 때문에 눈 내리는 날 상대적으로 날씨가 따뜻한 것이라고 한다.
나는 경상남도 마산 출신. 눈 구경하기 정말 어려운 지역이다. 마산의 초등학교, 간혹 중학교에서도, 수업 도중 무게감 있는 싸락눈이라도 내리면 수업을 잠시 중단하고, 선생님들이 운동장에 나가서 눈 구경을 하라고 한다. 그럼 우리들은 아프리카 원주민들처럼 내리는 눈을 신비한 눈으로 쳐다본다. 눈은 쌓일 새가 없다. 습자지처럼 쌓인 눈조차도 긁어모아 친구의 목덜미에 집어넣어야 하기 때문에. 영화에서 본 것처럼 눈뭉치를 양껏 모아 친구에게 던지고도 싶었고, 메추리알만한 것이 아닌 타조알만한 눈사람을 만들고 싶었지만 그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나의 어머니께서 들려주신 일화로는 수업 중간에 눈이 오길래, 아이들에게 10분 간 눈구경을 하고 오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작은 아이들 틈으로 거대한 성인 한 명이 폴짝폴짝 뛰고 있었댄다. 아이들보다 더 기뻐하면서, 거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서. 바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원어민 교사. 태어나서 눈을 처음 봤댄다. 하필 마산에서 근무를 하니 싶었다. 스키장 데려가면 놀라 자빠져 기절하는거 아닌가.
서울살이 12년 차, 어릴 때 눈만 보면 스카이콩콩 탄 어린애처럼 뛰던 나는 사라졌다. 눈은 실내에서 봐야 예쁜 것, 잠깐 내리다 말아야 하는 것, 나의 출퇴근에 영향을 끼치면 안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오늘 아침 출근길은 지옥이었다. 간밤에 내린 폭설로 많은 사람들이 차 대신 대중교통을 선택했다. 지하철로 몰린 사람들은 불과 2개월 전의 참사를 잊은 듯 했다.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터져나왔다. 인정사정없이 밀어버렸다.
회사에 도착한 내 몰골은 실험을 망친 박사처럼 머리카락은 삐죽삐죽 난리였고, 안경은 돌아가있었다. 씨발씨발 하면서 창 밖의 눈을 보는데... 문득 2001년의 어린 내가 떠올랐다.
2001년, 마산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었다. 마산 토박이 어른들도 이렇게 많은 눈은 거의 처음이라고 하셨을정도다. 자고 일어나니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던 그 충격을 잊을 수 없다. 대문을 열고 나가, 집 앞의 중학교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이었다. 무릎까지 차오른 눈을 엄마와 오빠와 뚫고 걸었다. 운동장 한 복판에서 눈 이불 위로 몸을 던졌다. 데구르르 굴러도 아프지도 않았고, 춥지도 않았다. 분명 어른들은 아침에 펼쳐진 기록적인 폭설을 보고 좆됐다,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의 오빠와 나는 그런 것을 알 턱이 없었다. 세상이 우리에게 눈 선물을 준 것만 같아 기분이 날아갈 듯 기뻤다.
그렇게나 소중한 눈이었는데. 사실 눈만 내리면 그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엄마랑 오빠랑 눈 위를 데굴데굴 구르던 그 날이. 아마도 난 그 기억의 힘으로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는 것일 수도 있는데. 눈이 온다고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직장인이 되어버렸지만, 한 편으로 그런 생각도 든다. 초딩들은 이 눈이 미치도록 반갑겠구나. 부모님이랑 형제랑 친구랑 눈사람 만들 생각에 한껏 들뜨겠구나. 그래, 하늘에서 장난감이 쏟아지는데 안 좋을 리가 있나.
오늘은 집 가는 길에 눈 한 번 뭉쳐봐야겠다. 누구 목덜미에 넣을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