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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노래 Aug 08. 2021

어느 하루

할머니, 엄마, 손자의 하루, 엄마의 인생은 한 편의 시

1.

엄마에게 드리려고 빵을 구웠다.

당뇨가 있으시니 밀가루 대신 아몬드 가루로 반죽을 했다.

아몬드 가루 세 컵에 계란 두 개, 이스트 조금, 히말라야 소금 조금, 해바라기 씨와 호두를 넣고 반죽을 한 후 오븐에 35분 구웠다.

혈당 조절이 잘 안되어 좋아하시는 빵을 마음 놓고 못 드시는 엄마를 위해 모양은 엉성해도 고소하게 씹히는 호두 아몬드 빵을 따뜻할 때 어서 갖다 드려야지.


*엄마, 에어컨도 없는 집에서 목숨 걸고 구웠어~


2.

"엄마~ 할머니한테 간다며? 나도 같이 가자. 내가 운전할게~"


훈이가 어느새 내 동선을 입수했다.

또 할머니와 통화를 했나 보다.

딸인 나도 일주일에 서너 번 밖에 전화를 못 하는데 녀석은 매일 저녁 할머니에게 전화를 드린다.

고3 일 때도, 독학 재수할 때도 매일 저녁 시간에 울 엄마랑 통화를 했다니 참 신기한 녀석이다.

어쩌면 수험생활 그 지독한 외로움을 할머니와 나누며 마음결을 다스렸을지도 모르겠다.

작년 이맘땐 독학재수하는 아들 보며 맘이 쪼그라들었는데 어느새 이 넘이 운전대를 잡고 할머니 집까지 내 차를 몰고 가다니.

무튼 나는 지금도 이 초보 운자자님 때문에 심장이 쪼그라든다.

조수석에 있지도 않은 브레이크를 마구 밟으며.


3.

엄마, 있잖아~ 이 할머니 말이야. 90살 넘어서부터 시를 썼다네.

이 책은 이 할머니가 백 살 되던 해에 나왔대. 엄마도 안 늦다. 자식들한테나 손주들한테 편지 써보시는 게 어떨꼬?


아, 대단하네. 그래, 나도 편지 한 번 쓰보까? 그런데 연필 쥘 힘이 엄는데 되긋나.. 요새는 말도 잘 생각 안나 가꼬 입 밖으로 안 나오는데..


옴마아~ 천천히 쓰모 되지. 자꾸 쓰다 보면 손에 힘도 더 생길 거야.

엄마, 내가 이 할머니 시 하나 읽어줄게.


공교롭게도 엄마에게 읽어드린 시바타 할머니의 <어머니>라는 시가 엄마 이야기랑 너무 닮았다.

엄마도 엄마의 엄마가 88세 되실때까지 모셨다. 늙은 딸이 더 고생하는 것을 볼 수 없었던 할머니는 스스로 요양원에 가셨는데 엄마는 그 먼 길을 매주 엄마의 엄마를 만나러 가셨었다. 울 할머니는 90세에 하늘나라로 가셨고 엄마는 70살이었다.


그 책 내한테 주고 가라. 심심할 때 읽어보구로..


*88세 울 엄마한테 친구가 생겼다.



                <어머니>
                 시바타 도요(1911~2013)

돌아가신 어머니처럼
아흔  나이가 되어도
어머니가 그리워.
노인 요양원으로
어머니를 찾아  때마다
돌아오던 길의 괴롭던 마음
오래오래 딸을 배웅하던
어머니
구름이 몰려오던 하늘
바람에 흔들리던 코스모스
지금도 또렷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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