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의 노래 Nov 02. 2021

시간여행으로 엄마를 만나다

엄마는 어쩌면 30년 후의 나일 거야..

행복을 경계하는 아이러니


내 마음과 영혼은 일상의 많은 부분 속에서 행복하다. 그런 것 같다.

연로하신 두 분 어머니께서 자식들의 관심 속에 크게 편찮으신 데 없이 평안함에 감사하며, 마치 나의 손발 같은 자상한 남편 덕분에 집에서 몸이 수고롭지 않은 것에 감사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지만 대체로 잘 성장한 딸과 아들이 있어 감사하다. 

일상의 감사함이 곧 행복이라면 나는 행복하다.

가끔씩 꽉 찬 행복을 느낄 때 나는 곧 경계한다.

감사함으로 꽉 찬 주머니가 부푼 풍선에 바람 빠지 듯 쪼그라들면 어쩌나 전전긍긍 해진다. 

내 바보 같은 의심으로 감사의 빛이 희미해지며 점멸한다.

실체 없는 불안이 또 시작되는 것이다.

88세이신 엄마, 86세이신 시어머니가 어느 날 우리 곁을 떠나면 어쩌지..

남편이 혹시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지..

계약직 사원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딸이 혹시 모를 갑질에 시달리다 마음의 상처를 입으면 어쩌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불안을 먹고 형체를 갖기 시작하며 내 마음을 좁고 어둡게 만든다.

조금 전까지 너무 감사해서 마음이 벅차올랐는데 말이다.


오늘도 시간여행으로 엄마를 만나러 간다


며칠 전에 끄적였던 글 속의 실체 없는 불안이 현실이 되어 일상을 흔들고 있다.

엄마가 횡단보도를 건너다 넘어지셔서 왼쪽 어깨가 부러지고 오른쪽 손목이 골절되어 수술을 받으셨다.

양쪽 손을 다 못 쓰시니 24시간 간호간병 통합 병동에 입원해 계신다. 


" 자식들이 나를 좋아해 줄 때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 죽고 싶다. 너무 오래 살아서 힘들고 지친다.."


엄마는 우리 5남매의 사랑을 많이 받으며 살았으니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시며 자식들 고생시키기 전에 자꾸 죽고 싶다, 죽고 싶다..라고 하신다. 

보호자가 상주할 수 없는 병동이라 우리는 오전, 오후로 나누어 돌아가며 엄마를 뵈러 간다.

나는 화요일, 금요일에 엄마를 뵈러 가는데 엄마는 내 눈을 보려고 하지 않으신다.


"엄마, 엄마, 나를 좀 쳐다봐. 왜 나를 안 봐."

"막내가 제일 고생이라.. 그냥 빨리 죽고 싶다."

"나는 엄마 없으면 안 되는데? 엄마 죽으면 나도 따라 죽어 삔다.. 그런 말 좀 하지 말고 엄마 힘내서 밥 많이 먹고, 빨리 병원에서 나가자. 이번 고비만 넘기면 괜찮다 엄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눈물이 흘렀다. 

엄마와 헤어질 날이 성큼 다가온 것 같은 두려움이 휘돌았다.

나이가 오십 중반이 되어도 엄마는 내가 기댈 수 있는 큰 나무 같다.

언제든 쉬고 싶을 때 나무 그늘 아래서 쉴 수 있는 그런 큰 존재인데 그 나무가 내 곁에 없다면 아무 데도 갈 곳이 없지 않은가.


요즘은 늦은 시간에 산책을 한다.

걷는 동안에 무거웠던 마음이 희한하게 조금씩 조금씩 가벼워진다.

부정적인 생각보다 건강한 생각들이 스며든다.

며칠 전 산책 중 들었던 마이클 부블레의 노래 'Home' 가사가 마음으로 쑥 들어왔다.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어도 난 외로워, 집에 가고 싶어..'

나에게 집은 '엄마'라는 이미지다.

물리적 공간이 아닌 무조건적인 사랑과 온기로 가득한 엄마의 숨결이 있는 곳 말이다.

나도 내 아이들에겐 엄마이자 '집'일 것이다.


매일 기도를 드린다.

'하느님, 엄마의 육신의 고통을 낫게 하셔서 자식들 곁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하소서. 저희들 곁에서 웃으며 건강하게 사시다가 따뜻한 날 꽃구경 가듯 하느님 나라에 가실 수 있게 시간을 조금만 더 허락하소서..'

매일 이렇게 기도를 드리니 두려움이 사라진다.

어느 날일지 모를 엄마와 헤어짐으로 인한 슬픔, 회한, 후회가 남지 않게 엄마를 볼 때마다 손을 잡고, 얼굴을 만지고,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미래의 내가 그리움에 사무쳐 시간을 거슬러 엄마를 만나러 가는 것처럼 시간 여행하는 마음으로 엄마를 보러 간다. 그런 마음으로 가니 엄마가 너무너무 반갑고, 소중하다. 

그리고 또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엄마는 어쩌면 30년 후의 나일지도 몰라..

엄마를 사랑하며 돌보는 건 30년 후의 나를 사랑하고 돌보는 것과도 같아.

엄마는 나야 나..


늙고 병든 나를 보듬어 안 듯 엄마를 꼭 안는다. 

시간을 거슬러 엄마를 만나러 온 간절한 마음으로 더 꼭 껴안는다. 

시간 여행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오늘도 시간여행으로 엄마를 만나러 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하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